[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5>바람둥이 휘어잡는 ‘초강력 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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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바람둥이를 볼 때면 ‘우표를 모으는 괴짜 소년’ 이미지가 떠오른다. 희귀 우표를 어렵사리 구해 스크랩북에 넣고는, 더는 그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 이상한 소년이랄까. 여성을 우표에 비유할 순 없지만, 바람둥이의 강렬한 추구는 그런 소년만큼이나 맹목적이다.

그런데 바람둥이는 환경이나 도덕, 교육 등의 결핍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유전적으로 타고난 결과라는 사실을 서구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바람둥이는 변이 유전자를 물려받는 바람에 ‘바소프레신’이라는 성 호르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호르몬은 연인과의 유대감을 오랫동안 이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격정적인 사랑이 다소 식더라도, 남자로 하여금 관계에 대한 의무감 또는 헌신성을 발휘해 좋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하게 해준다. 반면 바람둥이에게는 바소프레신이 부족하므로 무책임한 욕망만을 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람둥이야말로 여성들과 상극일 수밖에 없다. 욕망에 충실한 그들과는 반대로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감성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람둥이에게 넘어가는 평범한 여자가 은근히 많다.

“바람둥이는 질색이에요.” 여성들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마음을 빼앗아간 장본인이 그러리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바람둥이의 외모와 매너에 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결정적 포인트는 바람둥이의 ‘열광’이다.

바람둥이는 거절을 당할수록 열광한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집요하고 끈질기다. 여성들은 그런 열광을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순수한 다짐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여성이 마음을 활짝 여는 순간, 바람둥이는 스크랩북을 닫고 다른 여성에게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람둥이도 언젠가는 ‘임자’를 만난다. 하던 짓을 되풀이하다 멱살을 감아쥐는 누군가의 억센 손에 잡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대개 ‘초강력 부인’이다. 그녀는 강력한 육감을 동원해 남편의 눈빛만 봐도 귀신같이 거짓말을 분간해낸다. 성격도 보통이 아니어서 웬만한 남자는 주눅이 든다.

이런 여성들은, 자신이야말로 바람둥이를 ‘일편단심 남편’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라고 믿는다. 그래서 ‘타고난’ 바람둥이와 ‘타고난 것마저 바꿀 수 있다’는 임자 사이의 쫓기고 쫓는 전쟁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런 커플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바람둥이 친구들은 몇 번 결혼을 해서라도 ‘임자’를 만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신기할 정도다.

한상복 작가
#남자이야기#바람둥이#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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