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새벽편지]유월의 무논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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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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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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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유월의 차창 밖을 바라본다. 모내기를 끝낸 무논의 풍경이 아름답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어린 벼들이 연초록 옷을 입고 고요하다. 푸른 산 한 자락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전봇대의 그림자가 무논에 어린다. 어느 농부가 부지런히 타고 왔다가 논둑에 세워둔 자전거 한 대도 물속에 제 그림자를 드리운다. 백로 한 마리 무논에 무심히 외발로 서 있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모내기를 끝낸 저 푸른 유월의 풍경 때문에 우리나라는 아름답다. 온갖 자기주장과 시위와 위선과 기만이 날뛰어도 무논은 말없이 아름다울 뿐이다. 물론 무논의 아름다움 속에는 모내기라는 노동의 고단한 과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무논은 인간의 노동이 그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담담히 자연의 풍경으로 보여준다.

나는 무논의 아름다움도 무논을 일군 노동의 수고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못자리를 잡고 볍씨를 뿌려 키우고 모내기하는 농부의 땀과 정성을 통해 내가 매일 먹는 쌀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 잊고 살아왔다. 쌀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내고 사먹었을 뿐이다. 그동안 쌀을 살 때마다 내 눈에는 늘 상표와 가격표만 보였다. 값을 지불했다는 이유만으로 농사의 고유한 가치마저 산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가치를 내 것인 양 착각해왔다.

농부의 고마움 잊고 사는 도시인

어릴 때 우리 집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나는 가끔 동네 어른들이 모내기할 때 못줄을 잡아주고 칭찬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일손이 모자라는 곳에 지원을 나가 삐뚤빼뚤 모를 심어 드리기도 했고, 군 생활을 할 때는 대민봉사를 나가 모내기를 해드리고 양푼이밥을 실컷 얻어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의 골목길은 알아도 무논의 논길은 모른다. 모내기할 때 맨발에 닿던 진흙의 미끄덩한 감촉도, 종아리에 달라붙은 섬뜩한 거머리도, 밤새 요란하게 울어쌓던 개구리 울음소리도 잊은 지 오래다.

내 책상 벽에는 한 농부가 비옷을 입고 소를 몰며 논을 가는 장면의 사진 한 장이 걸려 있다. 사진작가 전민조 씨가 찍은 1970년대 농촌사진이다. 나도 저 소를 몰아 못자리를 잡는 농부처럼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붙여 놓은 사진이다. 그래서인지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경건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느낌도 지하철을 타고 앉을 자리가 없나 두리번거리는 동안 다 잊어버린다. 그만큼 복잡한 도시인의 이기적 일상에 길들어버렸다. 이제 저 무논의 아름다움 속에 예비되어 있는 것은 고통이다. 어린 벼들은 곧 가뭄과 태풍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계속 햇볕만 내리쪼이면 벼들은 곧 가뭄의 고통을 당할 것이고,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면 곧 태풍의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벼들에게 그런 고통은 당연하다. 고난 없이 자라는 벼들은 없다. 가뭄에 목마르지 않는 벼가 없고, 태풍에 쓰러지지 않는 벼가 없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벼 포기도, 태풍에 쓰러져 있다가도 포기끼리 묶어주면 서로 기대어 일어나는 벼 포기도 실은 당신과 나의 삶을 닮았다. 그런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면 벼들은 잘 여문 이삭을 매달고 겸허한 자세로 고개 숙일 수 없다. 쓰러진 벼 포기를 일으켜 세우듯 쓰러진 인생도 일으켜 세워야 고개 숙인 이삭 같은 열매를 얻는다.

예전에 쌀이 귀할 땐 쌀 한 톨을 참으로 소중히 여겼다. 부모님은 밥상 위에 떨어진 밥 한 알조차 꼭 집어먹도록 가르치셨다. 나는 지금도 밥 한 알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밥그릇 가장자리에 남아 있는 밥알을 하나하나 떼어먹으면 점잖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좀 점잖지 못하면 어떠랴. 밥 한 알에 사랑이 있고 우주가 있다. 무논의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누구를 사랑할 때도 무논을 향해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농부의 발소리와 같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그렇지 못한 채 밥을 먹는다. 밥 한 알 속에 들어 있는 햇빛과 달빛과 별빛의 기운을 먹고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얻는다. 쌀 한 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구부정한 논길이 보인다. 해질녘 어깨에 삽을 걸치고 돌아가는 농부가 보인다. 쌀 한 톨 앞에 무릎을 꿇고 늦게나마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밥값’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지…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제발 밥값 좀 하라”고 나무라기도 하셨다. 나는 이제야 밥값을 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지 내게 물어본다. 부끄럽다. 밥값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매일 밥을 먹는 게 마냥 부끄럽다. 그렇지만 더 맛있게 밥을 먹고 이제라도 밥값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아름다운 무논을 바라본다. 농부 한 사람이 논둑에 백로처럼 서서 무논 바닥을 바라본다. 밥값을 하기 위해 나는 인생의 무논 바닥으로 더 내려가야 한다.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 벼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를 알기 위해 벼농사를 짓는 것이라면 내 인생의 농사 또한 그러하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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