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북한의 게임 플랜

  • 입력 2009년 4월 2일 02시 57분


주변국의 경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거나 요격당할 위험 부담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손해 안 보는 도박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결과가 여의치 않을 경우 1998년 8월 대포동 1호나 2006년 7월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실패 때와 마찬가지로 연막작전을 펼 수 있다. 탑재물이 탄두가 아닌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요격을 피할 수 있다. 로켓의 탑재물이 궤도 진입에 성공할 경우 미국 등 원거리에 있는 나라에도 위협을 가할 능력이 있음을 과시할 수 있다. 북한은 로켓 발사를 두 가지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하나는 위협 능력을 인정받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북-미 양자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소환 카드(calling card)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와 보상을 받아내는 협상 카드(bargaining card)이다.

각국은 무엇인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다각적인 접촉과 협의를 벌일 것이다. 유엔에서도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의 위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을 것이다. 북한의 소환 카드는 과거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핵무기 실험 이후에서 보였던 것처럼 나름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미국을 다시 한반도 문제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여 핵 문제뿐 아니라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미 간 협상을 본격적으로 재개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핵무기를 핵탄두로 개발하여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능력까지 확보한 경우 미국은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로켓발사 후 美와 ‘통큰 협상’

북한은 미국이 가장 어려운 시기임을 틈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 문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문제, 탈레반의 도전, 이란 이라크 등 중동 문제에 집중해야 할 뿐 아니라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새로 출범한 행정부로서 전반적인 정책 검토(policy review)도 끝내지 못한 상태이다. 심지어 동아시아를 담당하는 차관보는 의회 인준은 고사하고 지명도 하지 못한 상태이다.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대사를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했지만 북한과의 협상은 물론이고 한국 등 동맹국과의 정책 협의도 적극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은 이런 시점을 택해 핵무기와 운반수단의 확보를 기정사실화하고 유리한 위치에서 미국과 협상할 태세를 갖춘 것이다.

결국 미사일 문제는 핵문제와 함께 6자회담에 맡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이미 북한에 대해 장거리 로켓 발사와 상관없이 핵 협상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놓았다. 미사일 문제도 6자회담의 맥락에서 북한과의 협상 대상이 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한국이 6자회담에 매달린 동안 북한은 한미일 동맹국 간, 그리고 동맹국 내부의 정책적 혼선 및 갈등을 이용하여 시간을 끌고 상대방이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핵 무장을 이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위험과 희생이 따랐으나 북한은 그런 투자가 가치가 있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뤄 판단컨대 6자회담이나 양자협상을 통해 북한에 핵무기나 미사일을 포기하라는 이성적인 설득이나 유인책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가 없음이 분명하다. 앞으로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사태가 악화되기 전 시간을 벌고 현상을 관리하는 일 이상을 바랄 수 없다. 머지않아 북한은 또 한 번 위기를 ‘한 단계 올리는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미국으로부터의 식량 지원(약속한 50만 t 중 미제공분 32만 t)도 거절함으로써 채찍뿐 아니라 당근도 그들을 설득하는 데 소용이 없다는 결의를 과시한 바 있다. 북한의 게임 플랜(game plan)은 한국을 소외시키고 중국을 무마하면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통 큰 협상(grand bargain)’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책략에 익숙하지 않은 오바마 행정부에 뭔가 극적인 돌파구가 열릴 듯한 기대를 주어 북-미 양자 간의 빅 딜(big deal)로 유인해 보겠다는 의도라고 하겠다. 이에는 심각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한-미 대응시나리오 만들어야

설혹 큰 협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이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의 예로 보아 북한은 합의의 이행과정을 여러 개의 살라미 조각으로 잘라 시간을 끌며 단계마다 보상과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언제라도 필요하면 구실을 찾아 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북한문제와 관련해 몇 가지 시나리오와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현실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역학관계와 안보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미 양국의 냉철한 대응과 공조 그리고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요구된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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