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세이]강신우/쿠엘류는 왜 떠나야 했나

  • 입력 2004년 4월 2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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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의 외국인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 땅을 떠났다. 축구 감독들은 그 자리에서 떠날 날을 떠올리며 사직서를 작성하는 기분으로 계약에 임한다고 한다. 실적이 부진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떠나야 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쿠엘류 역시 그랬다. 무엇이 쿠엘류를 물러나게 했을까.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다음 월드컵에서 어이없게도 예선 탈락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올렸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만큼 견제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팀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견제하려는 세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만큼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해나가기 어려워지고 심리적인 압박도 커진다.

승리에 따르는 부와 명예가 선수들의 실력 유지와 향상에 저해요인이 되기도 한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4강 신화를 이뤘기에 선수들은 아시안컵 수준의 지역대회에서 온몸을 던지는 투지와 의욕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전임 감독인 히딩크가 세대교체를 통해 욕심과 투지가 있는 선수들을 충원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히딩크는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경우다. 그런 감독의 후임은 준비를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본전도 못 찾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그 첫 희생자가 박항서였고, 쿠엘류는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쿠엘류는 떠나면서 재임기간 중 국가대표팀 훈련시간이 72시간밖에 안 됐다는 점과 지원 부족을 토로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축구대표팀 소집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1월 축구대표팀 소집 규정에 따른 훈련소집 기간의 단축이라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고 있는 국내 프로리그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선진 축구강국처럼 프로리그 중심의 환경이 돼야 한국 축구의 저변이 탄탄해지고, 그래야만 월드컵 4강 성과를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어 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72시간을 720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했고, 월드컵 당시의 지원체계를 다시 갖춰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또한 선수들을 다 불러 모으기가 쉽지 않으면 선수를 개별적으로 부르거나 찾아가는 등 소집 규정을 지키면서도 훈련시간을 극대화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쿠엘류는 과제가 산적해 있는 시기에 한국팀을 맡았다. 승리를 거두고 난 뒤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하는, 아직 완전 프로화가 안된 한국 선수들의 마음가짐과 월드컵 이후 기대치가 높아진 한국 국민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기다림의 인내를 그는 우리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득세하면서 쿠엘류는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결국 타협이라는 모양새로 물러났다.

후임 감독이 성공하려면 쿠엘류가 놓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원 수준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어 계약 내용에 반영해야 하며, 한국 축구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변덕스러운 여론에 대해 데이터를 보여주며 철저하게 관리하는 스타일의 감독이 유리할 듯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훈련 상황을 수치화하고 가시화할 수 있는 꼼꼼한 지도자가 한국적 풍토에서는 더 잘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신우 SB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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