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칼럼]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 입력 2004년 1월 28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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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懷疑)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컴퓨터 앞에 앉은 이 순간 저의 마음은 그 어떤 글을 쓸 때보다 훨씬 간절합니다.

지난주 국제앰네스티가 시작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보내기 운동’에 힘입어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비록 외국인들이 시작한 운동이지만 2300만 북한주민의 미래를 위해 김 위원장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한 기자의 글이 아니라 북녘 동포의 행복을 바라는 남녘 동포의 염원이 담긴 편지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2300만 북한동포를 위한 호소 ▼

먼저 앰네스티 문제부터 말씀드리지요. 앰네스티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은 인권을 위한 싸움’이라고 규정하면서 북한의 차별적 식량 배급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국가에 충성하는 주민에게 우선적으로 국제사회가 지원한 식량을 배급하고 있다면서 식량난을 불만세력 박해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북한의 실상은 김 위원장이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요. 유감스럽게도 식량난이 여전히 심각한 듯합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2, 3월 중 식량배급이 대부분 중단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이미 270만명에 대한 배급이 중단됐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꽁꽁 언 곡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 노동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그런 조리법을 고안했을까요. 지난해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핵문제 여파로 38%나 줄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위원장도 앰네스티가 어떤 단체인지 잘 아실 겁니다.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입니다. 160여 개국 160만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단체가 캠페인을 시작했으니 제대로 전달된다면 수십만통의 항의편지를 받으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편지 행렬은 하루 이틀이 아니고 수개월 동안 지속될 겁니다.

한국이 독재에 시달릴 때 수많은 앰네스티 회원들이 민주화를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던 일을 기억합니다. 당시 한국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내정 간섭’이었지만 그런 캠페인이 한국의 민주화에 적잖은 힘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프리카처럼 혹독한 환경 탓에 북한 주민이 굶주리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정부의 잘못이고 지도자의 책임이지요. 위원장께서 10년째 통치하고 있는 나라의 수많은 주민들이 굶주리는 비극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겁니까. 앰네스티의 캠페인을 선의로 받아들여 해결책을 찾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세계의 변화를 보시라는 겁니다. 엊그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미국 의회 대표단과 환담하는 외신 사진을 보셨는지요. 카다피 원수가 지난해 12월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한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과 리비아 관계는 봄눈 녹듯 풀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리비아를 불량국가,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해 적대시해왔습니다. 그런 리비아의 지도자가 변하자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 화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카다피 원수가 핵무기를 포기했을까요. 대결의 무익함을 깨닫고 평화의 유익함을 추구하는 것이겠지요.

▼'광폭정치'를 고대하며 ▼

김 위원장은 이른바 광폭(廣幅)정치를 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남한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에 김 위원장이 있기 때문에 성사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2001년 1월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가자’는 신사고(新思考)를 주창한 뒤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세계가 얼마나 놀랐습니까.

또 한번 놀라고 싶습니다. 카다피 원수처럼 긍정적인 선택을 했으면 합니다. 김 위원장이 변하면 세계가 변할 겁니다. 부디 주민들의 고통을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좋은 소식 기다립니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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