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분단시대’의 역사는 惡인가

  • 입력 2004년 7월 28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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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신문에 외국의 사례 소개도 많아졌다. 그 가운데엔 통일 독일의 수도 이전과 관련해서 나치즘에 대한 깊은 혐오 때문에 베를린 천도를 반대한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는 기사도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베를린이냐 본이냐. 독일연방의회는 1991년 6월 20일, 이 의안을 둘러싸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당적으로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 결과 마침내 327표 대 320표의 근소한 차로 베를린 천도가 결정되던 날, 나는 여행 중 우연히 본에 들러 그 전 과정을 종일 TV 앞에 앉아서 지켜보았다.

▼통일 독일의 과거에 대한 긍지▼

그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8년 후인 1999년 6월 30일, ‘베를린 시대’의 개막을 위해 독일현대사의 ‘본 시대’의 막을 내리는 성대한 고별잔치도 여행 중 우연히 구경하게 됐다. 잔치의 표어는 ‘민주주의 50년-본에 대한 감사’.

통일 독일의 수도로 의원 320명이 본을 고집했던 까닭은, 그리고 베를린 천도를 앞두고 본에 대한 성대한 감사의 고별잔치를 베푼 까닭은…. 그것은 나치 독일의 ‘과거’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 아니었다. 패전 후 분단 독일이 출범시킨 제2공화국의 수도 본이 성취한 민주주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본이 이룩한 성취에 대한 높은 긍지가 통일 후에도 본을 아쉬워했던 것이다.

바이마르에서 탄생하여 14년 만에 요절한 독일의 제1공화국과는 달리 본에서 탄생한 제2공화국은 민주주의 50년의 역사를 통해 독일민족이 지난 1000년의 역사에서 일찍이 누려 보지 못했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일상화하고,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복지를 누리며, 마침내 어떤 유혈 참극도 없이 통일의 위업을 성취했다는 긍지! 베를린의 과거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본의 어제에 대한 긍지가 통일 수도 본을 주장하는 여야 의원과 국민 사이에 넓은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분단의 현대사를 경험했으면서도 한국엔 있고 독일엔 없는 것이 있다. ‘분단시대’라는 말이 그것이다. 같이 큰 역사를 이룩했으면서도 그들에겐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이 있다. 과거에 대한 긍지가 그것이다.

‘분단시대’란 말은 ‘통일시대’란 말과 짝이 되는 고약한 2분법적 가치개념이다. 순진한 통일지상주의자들에게 통일은 그 자체로 선이요, 분단은 악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분단시대란 말이 자리 잡게 되면 분단시대에 이룩한 모든 것은 격하되고 폄훼되고 부정된다. ‘말’이 갖는 마력이요, 폭력이다.

국토의 분단에도 불구하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가 성취한, 20세기 유일의 성공 사례라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평가한 산림녹화사업, 의무교육의 전면 도입과 고학력 사회의 실현, 역사에 선례가 없는 초고속 산업화와 정보 사회의 건설, 패전국에 강요된 일본 서독의 민주주의와 달리 맨주먹의 시민혁명으로 쟁취한 민주화와 정권의 평화적 교체. 게다가 온 세계가 참가한 88올림픽과 2002 한일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개최….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분단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해 낸 것이다. 통일시대를 사는 다른 나라들이 100년 걸려도 단 한 가지조차 성사시키기 어려운 일들을 우리는 분단시대에도 아랑곳함이 없이 모조리 한 인간의 한 세대 시간 안에 성취한 것이다. 그러한 우리의 과거가 왜 우리들의 자랑이 아니란 말인가. ‘분단시대’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산업화,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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