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박성희/‘만두 속’ 대한민국

  • 입력 2004년 6월 1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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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처럼 노동집약적인 음식도 드물다. 재료를 썰어 버무리고 밀대로 만두피를 만든 후 만두를 빚고, 그걸 다시 끓이거나 튀겨서 낸다. 이렇게 길고 복잡한 공정을 생각하면 냉동만두가 있다는 사실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줄어든 일손만큼 주부들은 행복해지고, 그 행복은 가족으로, 사회로 전이될 것이다. 냉동만두가 가져올 행복의 도미노 현상이다.

최근 폐기 단무지로 속을 채운 일명 ‘쓰레기 만두’가 일으키는 파장은 색다르다. 재료의 납품에서부터 가공, 처리, 판매, 홍보 그리고 당국의 적발과 그에 따른 처벌, 언론 보도에 이르는 전 과정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취약점을 모조리 보여주는, 부조리의 진열장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문제점 모두 드러내▼

쓰레기 만두를 변명하기 위한 ‘폐기 단무지 재활용설’은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 단무지의 끝부분은 볼썽사나울 뿐 먹기에 문제가 없기에 사용한다는 주장이다. 재활용은 미덕이다. 다만 자투리 무를 위생적으로 취급하고, 헐값에 공급 받은 만큼 절감된 원가를 가격에 반영하고, 포장겉면에 폐기 단무지를 재료로 명기한다면 말이다. 비록 쓰레기라는 오명은 썼지만 단무지는 무죄다. 잘못은 거짓말을 한 인간들에게 있다.

문제가 된 만두제조업체가 25군데가 된다는 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섬뜩할 노릇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통해 대기업에까지 납품됐다는 보도는 구멍 뚫린 품질관리에 대기업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영세기업은 영세해서, 대기업은 확장에 바빠서 깨끗한 만두 하나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 실종된 건 정갈한 만두가 아니라 기업의 장인정신이다.

사태가 불거지자 만두업체들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보인 모양새도 만두 속 못지않다. 적발된 만두업체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전향적인 위기관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부인하고 해명하고 침묵한다. 폐기 단무지를 납품받지 않은 업체에서는 식약청이 보인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 소비자는 쓰레기 만두에 몸이 상하고, 기업들의 뻔뻔함에 다시 마음이 상한다. 책임지고 감독하는 신경이 마비된 사회의 단면이다.

여기에 언론이 궁금증을 가중시켰다. 언론은 만두 업체명을 영문 이니셜을 사용해 보도, 당장 어떤 만두를 먹어야 할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D업체’라는 보도에 모든 ‘D업체’가 긴장한 건 물론이다. 빈약한 언론자유 관련법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언론도 문제다. 익명 보도 관행은 취재원을 보호하지도,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지도 못한다. 차제에 탐사보도로 만두의 진실을 파헤칠 수는 없었을까.

이들 업체 중 일부는 이미 불량식품 제조혐의로 세 번이나 적발됐다고 한다. 그러고도 단 1개월을 제외하곤 줄기차게 폐기 단무지를 생산해 왔다고 한다. 얄팍한 상술을 알량한 과징금 제도로 다스리니 그런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음식장사가,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어 열심히 팔아 돈을 버는 일이 그렇게도 힘든 일이라면 우리나라는 분명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

▼도덕불감증 깰 의식혁명 절실▼

이 모든 장면이 국민소득 2만달러를 꿈꾸는 2004년의 일이라는 점은 더욱 절망스럽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꿀꿀이죽, 석고를 넣은 두부, 담배꽁초를 넣은 커피, 물들인 고춧가루, 사료용 대구머리로 끓인 탕…. 음식이 부족해 대충 먹던 시절도 지났다. 더구나 대통령도 지금은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버리는 음식을 남에게 먹여 돈을 챙기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런 수법이 아무렇지도 않게 판치는 사회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민혁명이 아니라 의식혁명이다.

냉동만두가 미덥지 않으면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될 일이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안 먹으면 된다. 그러나 만두 속에 담긴 우리사회의 도덕 불감증, 무너진 신뢰, 기업의 뻔뻔함과 당국의 허술함, 무원칙과 무신경, 돌멩이를 옥으로 둔갑시키는 가공할 속임수는 피할 길이 없다. 쓰레기 만두가 진짜 무서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박성희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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