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박성희/정부 홍보 갈길 멀다

  • 입력 2004년 1월 8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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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키퍼’라면 흔히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언론사 데스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회과학 문헌에 등장한 게이트 키퍼는 장바구니를 든 주부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소나 양의 내장류(sweetbreads)를 대중이 먹도록 장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살코기처럼 팔리지 않자 쿠르트 레빈을 중심으로 한 사회학자들이 아이오와시에서 소비패턴을 관찰했고, 그 결과 주부들이 수문장(守門將)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장류가 특별히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조리법이 까다로운 생소한 음식을 선뜻 장바구니에 넣지 않는 주부들이 대중의 소비를 막았던 것이다.

▼일방적 선전 먹히지 않는 시대 ▼

간 천엽 콩팥은 물론 곱창까지 맛나게 조리해 먹는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찌 됐건 내장류를 먹게 하려던 미국 정부의 노력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불에 뚝딱 구워내어 소스만 뿌리면 그만인 살코기를 놔두고 소금으로 씻고 각종 양념을 넣어 내장을 조리해 먹을 만큼 미국인들의 입맛이 섬세하다는 소식을 별로 듣지 못했다. 다만 미국 슈퍼마켓 육류 진열대는 예전에 비해 훨씬 다채로워졌는데, 그건 그 후 늘어난 이민자들 덕분이다. 독일에서 온 사람은 돼지 족발을,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사골이나 꼬리가 진열대에 나오기가 무섭게 사가고, 중동에서 온 사람은 양고기 부산물을 맛나게 요리해 먹는다. 다리가 넷이라면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인은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광우병 파동을 잠재우기 위해 한국에 온 미국 관리들을 보면서 제 나라 국민에게 생소한 음식 하나 먹이지 못한 사람들이, 하물며 병들었을지 모르는 소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무슨 수로 먹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보가 많고 선택이 자유로운 대명천지일수록 일방적인 선전은 먹히지 않기 마련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아무의 말이나 믿지도,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는다. 대중을 중요한 동반자로 인식하는 적극적인 홍보만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전쟁과 분단, 냉전과 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적지 않은 ‘선전의 추억’을 갖고 있다. 70년대 학생들의 도시락을 점령했던 혼식 열풍과 밀가루를 먹어야 키가 큰다는 밑도 끝도 없는 대중의 믿음은 정부 선전의 눈부신 성과다. 대표적 ‘민주투사’ 두 명이 연이어 대통령을 지내고 세기가 바뀐 지금, 우리나라는 일방적인 선전이 횡행하기에는 너무나 밝은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성숙한 대중을 설득할 만한 정부홍보는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직 사회는 언론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 그 포위선에 의해 국민과 분리되어 있으므로 극복하지 않으면 국민의 협력을 얻을 수도 없다”는 최근 대통령의 말이 이런 사정을 드러낸다.

공직사회를 포위한 언론 탓인지, 포위되었다고 느끼는 정부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한 해 국민은 언론이 전하는 대통령의 폭탄선언과 돌출 발언으로 계속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다. 머나먼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왜 우리 젊은이들이 가야 하는지, 왜 난데없이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재신임해야 하는지, 현 정부의 도덕적인 우월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정부가 나서서 국민을 시원하게 납득시킨 기억이 별로 없다. 납득 없이는 타협과 설득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 납득시키려는 노력 절실 ▼

다시 미국 슈퍼마켓으로 화제를 돌리면 그 후 대중에게 파고든 음식으로 두부를 꼽을 수 있다. 두부는 ‘무엇과 같이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변하는 희한한 음식’ ‘고단백 무지방 다이어트 식품’이라는 이유로 건강에 관심 많은 미국인들의 주의를 끌었다. 당뇨병 환자들의 권장식품으로 병원 식단에 올랐고, ‘두부 아이스크림’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결국은 맛과 영양이라는 두 가지 미덕으로 대중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이다. 공직사회를 ‘포위한’ 언론 탓에 홍보가 안 되어 고민인 우리 정부가 유념해 볼 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박성희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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