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병철/歸農, 육체적 혹사 정신적 호사

  • 입력 2003년 8월 15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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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전원이 돌보지 않아 잡초만 무성하니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 유명한 도연명의 귀거래사 첫 대목이다.

7월 말, 본격적인 휴가철의 시작과 함께 전북 무주군에 있는 푸른꿈 고등학교에서 우리 시대의 귀거래사를 노래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름 생태귀농학교가 열렸다. 벌써 7년째 매년 이맘때 이 학교를 여는 이유는 주로 직장인들의 여름휴가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올해도 50여명의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왜, 어디로 돌아가고자 하는가’ ‘이 시대에 돌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주제로 함께 학습하고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귀농학교를 열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이른바 생태적인 삶으로 전환하려 애쓰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들을 통해 새삼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추스를 수 있는 것은 내게 있어 큰 기쁨이자 행운이다. 4박5일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이 모두 서로 깊은 유대와 동질성을 느끼는 이유도 삶의 지향과 가치관이 같다는 점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귀농학교에 참여한 이들은 서로를 ‘도반(道伴)’이라고 부르는 데 어색해 하지 않는다.

생태적인 삶을 일구고 싶지만 농사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귀농 희망자들에겐 삶의 전환에 따르는 어려움들 즉, 고된 노동과 노력에 비해 열악한 소득, 생활의 불편함 등 농촌에서의 낯선 삶이 주는 두려움이 결코 만만치 않다. 바로 이런 문제들이 이들을 귀농학교로 모이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여름 생태귀농학교 과정은 ‘만남’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삶의 지향을 함께하는 도반들을 만나고 자연과 농촌 현장을 만나며 귀농한 선배들을 만나고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먼저 귀농한 선배들과의 만남은 가장 중요하다.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갖고 먼저 귀농한 이들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삶을 일구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귀농이 관념이 아닌 생생한 삶임을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다. 이들은 짧은 시간이지만 귀농한 이들의 집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며 귀농에 따른 현실적인 어려움과 문제를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푸른꿈 고등학교 인근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귀농자들이 모여 산다. 귀농학교 1기 출신부터 최근에 수료한 귀농자까지 20여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귀농자 중심의 생태마을을 처음 준비했던 곳도 이곳이다. 귀농자들이 유기농 생산자 모임을 구성해 운영하기도 하고, 비어있던 골짝에 들어가 새롭게 마을을 일구기도 한다.

우리는 이 짧은 여름생태귀농학교 과정을 귀농을 위한 ‘맛보기 과정’이라고 부른다. 맛보기 과정을 통해 생태적 가치와 자립적 삶이라는 지향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삶의 전환에 따르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큰 힘을 얻는다. 연어가 수천리가 넘는 먼 바다로 떠났다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처음 맛본 그 물맛을 기억하기 때문이란 이야기처럼.

생태귀농을 일러 ‘정신적 호사와 육체적 혹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4년 경력의 한 귀농자는 이 말을 받아 귀농이란 ‘실존적 고민으로 왔다가 생존적 고민에 빠지는 것’이라고 했다. 귀농을 통해 새롭게 삶을 뿌리내린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어둡지 않다는 점이다. 돌아감으로써 새로운 삶을 일구고자 하는 이들에겐 그것이 희망이다. 선배 귀농자에게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학습과 훈련, 몸으로 익히는 체험 과정을 통과한 사람에게서 엿보이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생태귀농학교 참가자들이 얻어간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싶다.

▼약력 ▼

1949년 생. 1974년 부산대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76년부터 가톨릭농민회,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에서 농민운동과 생태환경운동을 펼쳐 왔다. 96년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창설하고 본부장을 맡아 흙으로 돌아가는 삶을 주창하고 있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장·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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