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김원일/하늘의 도움만 기다리기엔

  • 입력 2005년 1월 2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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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해가 가고 2005년 새해다. 이틀 휴무가 끝나고 오늘 일터로 나서서 새해 새 출발을 시작한다. 작년 한 해는 국민 모두가 너무 힘들었다. 삶의 질을 평균화시키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목청도 구호로만 그쳤고 빈부 격차는 더 벌어져 서민들 살림살이가 하향곡선을 그렸다. 특히 빈곤층은 하루 세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존 자체가 힘든 한 해였다. 제발 이념논쟁은 차선으로 돌리고 경제부터 살리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그래서 올해야말로 첫 화두가 ‘경제 올인’으로, 그 가시적 성과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2004년 말에 발표된 모든 경제지표는 2005년 올해 국민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진 자들은 국내에서 돈 쓰기에 눈치가 보여 올해도 해외 나들이 소비를 일삼겠지만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신용불량자, 일용근로자, 독거노인은 넉넉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지 못했다. 자족(自足)과 안분(安分)이란 듣기 좋은 말로 새해 상차림을 해본들 그림의 떡이요, 우선 화급한, 먹는 문제부터 살펴봄이 실용적일 것이다.

▼자유향유권은 ‘밥 해결’부터▼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동독 출신 사람들은 ‘자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빵의 자급자족’을 여전히 최우선의 자유로 꼽고 있다. 사상과 표현, 직업의 선택, 거주 이동, 국민 참여정치가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자유라는 주장 앞에, 동물이 아닌 이상 먹는 것 자체를 자유의 최우선에 둔다면 누구보다도 이념주의자로부터 핀잔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식구 밥 먹을 수 있는 자유 다음에 ‘인권적 자유’를 논의하자고 빈곤층이 항변한다면 무슨 말로 설득할 것인가. 주림 앞에는 어떤 자유도, 인간적 품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해방공간의 이념시대와 동족상잔 전쟁을 겪었고,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보릿고개를 체험한 세대는 주림의 혹독함을 뼈에 새기며 성장했다. 근면과 절약을 신념 삼아, 자식 대에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고생고생 노력한 끝에 오늘날 허리 펴고 살만한 터전을 이루었다. 지난 60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의 성과가 꼭 고루 분배됐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국민적 저력으로 성취한 경제성장 덕분에 나라 살림살이가 이만큼 커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월수입이 4인 가족 최저생계비 105만 원에 못 미치는 극빈자 가구 수가 7%에 달하고, 결식아동 수가 10만 명에 이른다는 최근의 통계를 읽었다. 대학 진학률이 80%에 이르고, 휴대전화 보급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첨단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외진 곳, 구석진 곳에는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북한도 아닌데 먹을 수 있는 자유부터 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몇 백만 명에 이르도록 방치해 왔음은 사회안전망의 누수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래서 작년 한 해는 성장보다 분배가 우선이다,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다는 탁상공론만 설왕설래했다.

주림을 체험해 본 마지막 세대격인 대통령은 올해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가난 구제의 일차 책임은 국가에 있고, 사회가 빈곤층을 껴안아야 한다는 대통령 말씀은 지당하다. 올해 상반기에 100조 원의 예산을 조기 집행해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쏟는다지만, 무엇보다 극빈층이 밥걱정 안 하는 복지사회 실현에 ‘총력 올인’ 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가진 자의 참여 유도해야▼

그런 측면에서 ‘햇볕론’은 남북 화해협력에만 적용될 명제가 아니다. 부유층에 대해 의적(義賊) 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햇볕논리로 포용하는 사회적 합의부터 모아야 함이 상생과 화합의 순리다. 가진 자들이 자발적으로 주머니 풀어 내수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사회적 약자 보호에 적극 동참할 때,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올해가 보람찬 한 해가 될 것이다.

김원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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