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햇볕’ 연연말고 새 틀 짜라

  • 입력 2003년 1월 8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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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비판 받아온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가 북한당국에 대한 일방적 기대를 바탕으로 성급한 대북 협력정책을 밀어붙여 그들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안보체제만 흔들리게 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좋든 싫든 우리와 민족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협력대상인 동시에 이념적,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우리와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경계대상이다. 김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이 같은 이중적 성격에 적절히 대응하는 균형 잡힌 정책을 펴는 데 실패했다.

햇볕정책 옹호론자들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몇 차례의 이산가족 상호방문과 당국자회담 및 민간 교류, 그리고 철도와 도로 연결, 금강산 육로관광 및 경제특구 개발 등으로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평화보장 장치 없는 일방적 교류협력에 불과하다. 오늘의 북핵문제가 이를 말해 준다.

▼´베풀기´로 변질된 대북정책▼

지금까지 남북사이의 접촉에서 드러난 북한당국의 의도는 애매했다. 그들은 붕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쪽을 이용하려는 전술 변경 이상의 근본적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북한당국은 남한의 좌파세력들과 통일전선을 형성해 미군을 철수시키고 친북 정권을 수립한 다음 그들이 원하는 연방제 통일을 실현한다는 최종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요즘도 선전 전단을 고무풍선으로 보내고 있으며, 남한 내에서 지하혁명조직이 활동한다고 공공연히 선전하고 있다. 이 조직은 지난번 여중생 치사 사건을 기화로 남한 국민이 미국에 대항해 총궐기할 것을 인터넷으로 선동했다. 최근에는 남한사회의 변화에 자신을 얻었는지 ‘외세공조’ 아닌, ‘민족공조’를 택하라고 요구하면서 우리 국민도 김정일의 ‘선군정치(先軍政治)’를 받들라고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일부 비판자들이 생각하듯 당초부터 ‘조건 없는 대북 퍼주기’는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 ‘포괄적 상호주의’라는 원칙을 세웠다. 김 대통령은 재작년 3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북한지도층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시하면서 엄격한 ‘상호주의’를 요구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이 원칙을 역설했다.

그가 밝힌 포괄적 상호주의(Compre-hensive Package Deal)란 북한으로부터 제네바 핵동결 합의 준수, 미사일 문제 해결, 대남 무력도발 포기 등 세 가지를 받고, 북한에는 한미양국의 대북 안전보장, 적정한 경제협력,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과 차관 지원협력 등 세 가지를 주는 방안이다. 당시 김 대통령은 “이런 방식을 추진하되 이 약속이 실천되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 동안 김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받아내려 한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검증했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 핵 문제는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었고, 무력도발 포기문제 역시 지난해 6월말 서해교전 사건으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신형 미사일 실험은 중지되었으나 이미 개발된 미사일의 해외수출 사실은 지난해 12월 예멘으로 가던 북한의 스커드미사일 수송 화물선이 나포된 사건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대북 경제협력과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에 온갖 성의를 다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방한 때도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공언했다.

▼북핵사태로 모든상황 달라져▼

그렇다면 김 대통령의 포괄적 상호주의는 올 데까지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방적인 대북 베풀기 정책을 펴온 터라 지금 와서 이를 중단하면 봉쇄정책이 되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햇볕정책’이라는 명칭은 안 쓰지만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보완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것이라 한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일어난 지금은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만큼 과거의 정책에 매달려 ‘보완’ 운운해서는 안 된다. 햇볕정책의 맹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계획성 있는 프로그램과 이를 철저하게 중간 점검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의 틀을 짜야 할 것이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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