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압록강 두만강 건너 팔려가는 여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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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2006년 이후 탈북자 중에는 여성이 매년 75%를 상회한다.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최근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제출한 북한인권보고서에는 탈북자의 여성 비율이 높은 데 대해 “남자는 일을 하거나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는 데 비해 여성은 이동성(移動性)이 높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북한 일반 가정에서는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경제적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이 더 크다. 국경을 맞댄 중국 동북3성에서 북한 여성의 ‘시장 가치’가 남자보다 더 높다. 동북3성에는 북한을 탈출한 뒤 인신매매조직에 팔려 유흥가 또는 식당에서 일하거나 농촌으로 시집가 혹사당하는 여성이 많다.

KBS 윤수희 기자는 시사프로그램 ‘살아서 건너라―탈북 실태보고’(지난해 11월 13일 방영)를 취재하면서 한중 접경지역에서 2주 동안 탈북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북한에서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로 노역을 하다 가슴뼈를 다치고 폐결핵을 앓던 20대 여성은 배가 고파 풀을 뜯어먹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KBS 취재팀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에는 탈북자가 압록강을 넘어오다가 북한 경비병의 총을 맞고 죽어가는 장면이 있다. 탈북 기도자는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북한 당국의 명령이 내려졌다는 소문이 한중 국경지대에 나돌았지만 탈북자가 북한군 총에 맞아 사망하는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은 이것이 처음이다. 윤 기자는 이 프로그램으로 올해 초 관훈클럽이 주는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과 여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 여기자상을 받았다. 그는 여기자상 상금 300만 원을 탈북난민인권연합에 전액 기부했다.

박선영 윤수희의 ‘탈북 구명보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20일부터 서울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 텐트를 쳐놓고 중국에 억류돼 있는 탈북자들의 북송 중단을 요구하며 일주일째 단식을 벌이고 있다. 그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간 이후 중국 러시아 베트남 몽골 미얀마 태국 라오스를 매년 한두 차례씩 여행하며 탈북자들을 접촉하고 한국행을 지원했다.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김모 씨(85)는 박 의원의 도움으로 제3국에서 61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76세 여동생이 끓여주는 떡국을 먹었다(동아일보 2011년 2월 10일 보도). 그는 김 노인을 데려오기 위해 40여 개 유엔인권이사국 대표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박 의원은 MBC에서 12년 동안 일한 여성 언론인 출신이다. 그는 굴곡이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의 조난자 희생자들에게 구명보트를 보내줘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올해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의원이 되기 전 가르쳤던 동국대 강단으로 돌아간다.

이제 두 명의 여성과 대비되는 한 명의 남성 이야기를 해보자. ‘창작과 비평’ 편집인 백낙청 씨의 ‘2013년 체제 만들기’라는 책에서 탈북자에 관한 대목을 소개하겠다. ‘일부 탈북자 집단의 도발적 반북(反北)행위를 당국이 묵인하거나 음성적으로 지원하는 양상은 개탄해 마땅하지만…그들의 경험과 능력을 시민참여형 통일의 자산으로 살릴 길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109쪽). ‘탈북자 집단의 반북행위’란 국제사회의 소식과 북한 독재자의 부패상을 담은 전단(삐라)을 대형풍선에 실어 북한으로 날리는 행동을 말할 것이다. 독재 치하에서 고통받는 주민에게 세계 소식과 북한의 진실을 알려주자는 운동이 어떻게 개탄해 마땅한 도발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탈북자들이 ‘도발적 반북행위’만 그만두면 ‘통일의 자산’이라는 의미인가.

백 씨는 진보좌파의 이념을 만드는 이론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북의 천안함 도발에 대해선 “진상규명에 용감히 나선 개인들의 헌신, 누리꾼과 익명의 과학자들의 호응이 있었다”고 정부 발표를 부정한 사람들의 견해를 지지한다. 천안함을 타격한 어뢰에 쓰인 ‘1번’이라는 글씨는 믿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북의 3대 세습과 관련해 “현실의 안전한 관리를 일차적 목표로 삼았을 때 진지하고 실용적인 검토를 생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내재적(內在的)으로 평가했다. 백 씨의 책 어디서도 북한 주민의 인권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백낙청은 ‘탈북자 反北’ 비판 딴전

한국의 종북(從北)주의 진보좌파는 언제부터인지 통일 대신에 평화를 말한다. 남북 체제의 우열이 확연해지고 통일이 곧 북한의 붕괴 또는 흡수 통일을 의미하게 되면서 이들의 통일론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복잡한 논리를 간추리면 북한 체제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자는 생각이다.

북한 여성들은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다 들키면 총 맞아 죽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고, 운 좋게 도강(渡江)하면 중국 인신매매조직에 팔려간다. 이들이 흘리는 피눈물 앞에서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본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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