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조기숙 교수의 ‘魔法프레임’

  • 입력 2007년 2월 13일 19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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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교수가 동학농민운동을 촉발한 조병갑 고부군수의 증손녀라는 사실은 이 정부 초기부터 구전(口傳)을 통해 꽤 알려졌다. 그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그만두고 미국에 가 있을 때 ‘월간조선’이 이를 크게 보도했다. 이 보도로 조 교수의 충격이 무척 컸던 것 같다. 그의 최근 저서 ‘마법에 걸린 나라’에는 ‘그 일로 나는 사람을 기피하는 증세가 생겨 지금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고 있다’고 고백한 대목이 나온다. 조 교수는 월간조선 보도에 대해 “치졸한 족보 검증이고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증조부 연좌제적 비난은 부당

우리 헌법이 근대법의 이념인 ‘자기책임(自己責任)의 원리’를 받아들여 명문으로 연좌제를 금지한 것은 1980년부터다. 헌법 13조 3항은 누구든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불이익한 처분’은 형벌을 포함해 국가로부터 받는 모든 불이익한 처분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인에 대한 언론의 보도까지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만든 연좌제가 아직도 시행되고 있다. 정치범의 경우 부모와 자녀까지 수용소에 함께 보낸다. 황장엽의 저서를 보더라도 김일성은 공산주의 이념과도 배치되는 봉건주의자였다. 연좌제 같은 봉건 형벌을 채택해 세습왕조를 구축하는 데 활용했다.

조 교수가 동학농민운동유족회 앞에서 사과를 하거나 유족을 위로하는 뜻에서 매일 아침 108배를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할아버지도 아닌 증조부의 행위에 대해 ‘자산을 물려받지 않은’ 증손녀가 책임을 져야 할 근거도 이유도 없다.

월간조선 보도 이후 주류 언론을 향한 조 교수의 독설은 강도가 훨씬 높아졌다. ‘밤의 대통령’ ‘어둠의 마왕’ ‘마법사의 주술’ ‘청와대와 국민 사이를 가로막는 마법(魔法)의 유리벽’…. 주류 신문을 선택한 70∼80%(조 교수 책에 인용된 수치)의 국민이 ‘밤의 대통령’의 포로가 돼 있거나 ‘어둠의 마왕’이 건 주술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인가.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쪽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은 막말이다.

조 교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조간에 프레임을 만들면 그걸 받아 석간인 문화일보가 확대 재생산하는 순환 홍보를 일컫는 ‘조·동·문 프레임’이 정확한 용어”라고 말했다. 권력의 편에 선 사람들끼리 어느 신문을 넣고, 어느 신문을 빼주는 기준과 행태가 우습지도 않다. 집권 4년의 실패 원인을 신문에 미루는 ‘변명의 프레임’일 뿐이다.

대통령이 툭하면 주류 신문을 비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을 동원해 비판 신문을 압박하며, 직원의 80%가 반대하는 사람을 국내 최대 방송사의 사장으로 연임시키는 것은 자유언론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 언론 정책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은 퇴임 후 독재자 소리를 들어도 별로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조 교수는 그 대통령 밑에서 홍보수석비서관을 했고, ‘어둠의 마왕’ ‘밤의 대통령’ 같은 수사(修辭)와 논리로 언론 탄압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그가 책임져야 할 대목은 증조부의 행적이 아니라 바로 이 대목이다.

언론 탄압 논리 제공한 폴리페서

그는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던 시절을 언급하며 보수 언론과 방송이 나를 선호한 것은 ‘공정한 논평가’로서의 영향력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때 그의 칼럼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었다. 전직 장관 A 씨는 “칼럼을 읽으며 똑똑하고 괜찮은 교수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요즘은 그를 잘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열린우리당 탈당파처럼 타이타닉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관성은 어떤 면에서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공정한 논평가’의 자리를 잃고, 실패한 정치권력의 논리에 함몰된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의 모습에서 A 씨처럼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도 적지 않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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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길을 물으니
황호택이 만난 인생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11월 24일
쪽수 : 351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95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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