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칼럼]블루칩 아파트의 착륙

  • 입력 2007년 1월 30일 2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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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제일 비싸다는 강남구 삼성동 I아파트에 사는 지인은 작년 종합부동산세를 2000만 원가량 납부했다. 그가 사는 65평형 아파트는 시가 40억 원. 이 돈을 은행에 예치하면 이자소득세를 제하고 매달 126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작년에 재산세를 520만 원 납부했고 관리비로 한 달에 150만 원을 낸다. 집값의 기회비용(機會費用)에 종부세 재산세 관리비를 합하면 한 달에 1620만 원, 하루 54만 원의 거주비가 든다.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해당하는 거주비용이다.

특급호텔 스위트룸 거주비

한동안 친구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동시에 받던 그는 “집값이 크게 뛰었어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올해는 종부세가 더 오른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집값이 더 올라가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더 올라가면 더 강력한 것을 준비해서 내놓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며 고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테고, 대통령도 다분히 그런 다수를 의식해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남에 오래 살아온 집 한 채 갖고 있다는 것이 징벌을 당해야 할 죄악은 아니다. 집값은 세금폭탄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맞는 공급 친화적(親和的)인 정책으로 잡는 것이 옳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양도소득세를 완화해 종부세 폭탄의 퇴로(退路)를 열어 주면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I아파트에 사는 지인은 65평 아파트를 팔아 양도소득세 17억 원을 내고 나면 강남에서는 20평 이상 줄여 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소득이 없는 은퇴생활자들은 고액 세금을 내며 눌러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팔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전언이다.

오른 시점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다가 집값이 내렸다고 종부세를 돌려주지는 않는다. 미실현(未實現) 소득에 대한 과세라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있어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대부분의 국가는 보유세를 취득가격 기준으로 부과한다. 종부세를 취득가격 기준으로 부과하면 위헌 논란을 불식하면서 장기 보유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정부는 재건축 단지가 아파트 값 인상의 시발이 됐다고 보고 재건축 규제를 신줏단지처럼 붙들고 있다. 그러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같은 장치가 있는 터에 과감한 발상 전환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강남에는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가 꽤 많다. 층고를 20층 이내로 제한하지 말고 40, 50층으로 높여 주면 공급이 2, 3배로 늘어날 것이다.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서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처럼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전망이 좋은 단독주택 값이 오른다. 차가 막히는 지역은 상가나 오피스빌딩의 인기가 높아지고 주거지역으로는 부적절해 집값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집값과 좋은 학교는 상관관계가 높다. 강남에서 멀리 떨어진 양천구 목동의 집값이 오르는 것도 학교 요인이 크다. 정부가 강북 뉴타운에 좋은 학교를 많이 세우고 쾌적하고 편리한 주거 여건을 조성한다면 강남 인근 신도시 건설 이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다.

종부세 退路열어 공급 늘려야

우리나라에서는 중산층이 저축한 재산을 장기적으로 안정되게 증식시킬 수단이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시중의 유동자금이 갈 곳을 찾아 헤매다가 부동산 쪽으로 몰리게 된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포스코 국민은행 KT&G 같은 블루칩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시장에서 제 값을 못 받고 있다. 그 대신에 강남 아파트들이 블루칩처럼 거래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블루칩에 장기투자를 하면 부동산 투기보다 안정성과 수익성을 더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가 많다. 정부가 안정된 경제정책으로 블루칩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연초에 버블 세븐 집값이 오랜만에 조금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수도권 집값이 자칫 경(硬)착륙하면 국가적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집값을 연(軟)착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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