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지금 혁명 중인가

  • 입력 2003년 3월 12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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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것은 ‘개혁’이지 ‘혁명’은 아닐 것이다. 새 정권 인사 누구도 혁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요즘 나라 상황을 보면서 혁명적 분위기를 느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새 정부가 내건 개혁의 내용 규모 파장이 지금까지의 상상을 절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혁의 온건한 모습은 그동안의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것일 테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정도는 개혁으로 쳐주지 않는 것 같다. 몸에 와 닿는 새로운 것이 없으면 개혁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바로 여기에 개혁의 함정이 있고 또한 여기서 아슬아슬하게 혁명과 경계를 이룬다. 특히 집권 초기 권력이 그런 유혹을 느낀다면 파장은 엄청날 수 있다. 여기서 혁명을 경계하는 이유는 동서 역사에 나타난 유형 무형의 폭력이 수반된 혁명의 파괴성 때문이다. 중국과 구소련의 예에서 사회는 그만큼 정체와 혼돈에 빠졌고 백성의 생활도 피폐했던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가.

▼총선겨냥 개혁세몰이 ▼

엊그제 있었던 노 대통령과 평검사 10인의 토론회를 보자.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인사권문제를 놓고 벌어진 격한 토론결과는 앞으로 검찰개혁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겠지만, 당장 그날 밤 엄청난 파괴력을 보였다. ‘현 검찰수뇌부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대통령의 ‘폭탄선언’은 취임 4개월 검찰총장의 심야 자진사퇴를 불러왔다. 대통령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상당수 검찰 지도부 인사들도 머지않아 자리를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지경에서 버틸 수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폭탄선언을 보면서 사람들은 프랑스혁명의 단두대를 떠올렸다. 프랑스혁명 때의 피바람을 육체적인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토론회에선 심리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럴 때 으스스하게 옥죄는 격렬한 혁명적 분위기를 느낀다.

혁명적 분위기는 바로 사회를 긴장시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개혁을 앞세워 사회를 긴장 속으로 몰아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 정치상황을 좀 더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대선 승리를 스스로 반쪽의 승리라고 표현했듯이 지금 정권의 최대 관심사는 내년 4월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승리해 나머지 반쪽을 채우는 일이다. 집권세력으로서는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못됐을 때의 상황은 생각하기조차 싫을 것이다. 현 정권의 지상목표는 총선 승리이고, 그곳에 정권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것은 뻔한 일이다. 여기서 개혁이야말로 ‘대선과 총선 승리 완결편’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최대 무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 대선에서 표출된 개혁 욕구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개혁시기와 속도에 대한 여러 이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현 정권의 자세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한마디로 대선 승리의 주축이 됐던 개혁 욕구 세력을 총선 때까지 개혁의 긴장 속에 묶어서 끌고 가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도 개혁의 장(場)을 계속 벌여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일이 있다. 개혁을 부정할 수 없다 해서 개혁에 따른 모든 결과가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혁명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개혁 불안’으로 인한 부작용을 간단하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개혁소외세력을 만들어 빚어지는 사회적 분열을 방치할 것인가. 개혁과 함께 내걸었던 통합은 더 이상 현 정권의 명제가 아닌 것 같다. 노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도전을 정면에서 격파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겼지만 뒤로는 그 승리의 축적이 없다. 왜 그런가. 이기기는 했지만 공감대를 이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혁의 요체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지 않겠는가.

▼‘三不安’ 사회의 단면 ▼

관점을 달리해 한국사회를 들여다보자. ‘개혁 불안’ 외에도 북한 핵 위기가 몰고 온 ‘안보불안’에 싸여 있다. 한미관계는 불편하고 그 끝을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 불안’ 역시 기업의 투자위축에다 가계부채 급증과 높은 청년실업률, 그리고 노사갈등까지 겹쳐 악화될 조짐이다. ‘삼불안(三不安)’에 시달리면서 나라 안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3·1절 행사에서 드러났듯이 상호 적대감마저 감돌 정도니 지금은 가히 분열 직전이다. 여기에 혁명적 분위기까지 덮친다면 파열의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계속 오르는 사회적 혈압이 심상찮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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