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웬 ‘역류’ 인가

  • 입력 2001년 10월 10일 18시 37분


성난 추석 민심을 겪고 나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역시 부질없었다. 민심 수속(收束)을 놓고 고심할 법도 한데 되레 정반대로 흘러가는 형국이니 시쳇말로 ‘구제불능’이다. 비리의혹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싸늘해지는 민심에 당황한 것이 엊그제 아닌가. 그런데도 권력의 과신 때문인지, 자만 때문인지 집권 세력은 놀랍게도 민심을 역류(逆流)하는 길을 가는 것 같다. 집권 여당은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흑색선전근절대책위를 구성했고, 벤처기업 자금의 야당 유입설을 흘리면서 포문을 열었다. 한마디로 비리 의혹의 진원은 야당의 흑색선전과 이를 보도하는 언론 때문이라는 식의 인식을 드러냈다. 잇단 권력형 비리의혹사건이 애당초 왜 불거졌느냐에 대한 성찰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일의 순서다. 그런데도 이는 과감히 생략하고 육박전이라도 벌이겠다는 자세로 나왔다. 집권 세력으로서는 휘둘러 댈 만한 위세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집권층의 오만(傲慢)으로 읽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밀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맞불을 놓고 강공으로 나가자는 생각이라면 착각이다. 그렇게 한다고 이제 와서 하루아침에 강해질 수도 없다.

▼정권재창출의 덫▼

집권 세력이 이렇게 일변(一變)한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고 이 대목에서 짚이는 것이 있다. 더욱 절실해진 ‘정권재창출’ 욕망이다. 실제로 ‘정권재창출’이란 말이 집권 세력으로부터 간단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됐다. 임기말의 대통령과 맥을 같이하는 같은 정파의 후보에게 다음 정권을 넘겨주자는 이 말엔 여러 가지 함의(含意)가 있다. 임기 종료를 앞둔 권력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과 가족, 친인척의 신변상 안전이다. 권력 주변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다. 권력의 칼자루를 놓자마자 험한 꼴을 당할 수는 없다는 뜻에서 대단히 절박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정치적 보호막의 구축은 정권 재창출의 첫 번째 과제다.

그뿐만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정권을 ‘물려준다’는 것에는 후임자에 대해 전임자의 위상을 높이는 포석의 의미도 있다. 정권을 물려주었으니 전임자를 알아서 잘 모시고 그의 정치적 영향력도 일정 부분 보장하라는 요구도 암묵적으로 포함돼 있다. 5공화국 말기에 ‘상왕(上王)정치’란 말이 한때 떠돌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가 하면 정권 재창출을 되풀이해 강조한다는 것은 스스로 비세(非勢)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여건으로는 목표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증거이다. 여기에 무리수의 함정이 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 둘 것은 역대 정권마다 정권 재창출을 내세웠지만 권력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권 재창출’에는 또 순리대로 따르는 정권 교체가 아니라 교체 과정에 인위적인 의도성이 내재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의도의 바탕엔 집권 세력을 강압적인 자세로 몰고가는 또 다른 이유인 권위주의 의식이 깔려 있다. 권위주의 타파를 가장 강조해온 현 정권이지만 지난 3년반 동안 권위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각하’가 ‘대통령님’으로 변했고 군장성 출신 얼굴들이 크게 줄었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권위주의의 색이 빠진 듯하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권력 실세와 지연을 같이하는 편중 인사, 언로가 막히거나 왜곡된 비민주적 정당 운영, 야당을 제압의 대상으로 보는 고압적 자세는 과거 정권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권력의 사유화’니 ‘제왕적 대통령’이란 지적이 왜 나왔겠는가.

▼‘新권위주의’모습▼

집권 세력은 종종 야당의 반대 때문에 할 일을 못한다고 하지만 집권 세력이 할 말은 아니다. 소수정권으로 출발했다는 엄정한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면 지금 같은 싸움질 정치는 피할 수 있다. 그런 시도는 단 한번도 없었고 소속 의원 꿔주기에 이르러서 권위주의는 정점에 달한다. 게다가 국정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대통령의 언동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식의 국정 운영과 정권 재창출 욕망을 보자면 간판만 바꿔 단 권위주의 정부의 모습 그대로다. ‘신권위주의’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민심을 역류하더라도 ‘우리 길을 가겠다’면 하는 수 없지만 그 불행한 결과는 이미 역사의 기록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최규철<논설실장>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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