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패트릭 크로닌]국제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중견국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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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동맹과 미국의 장기적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제질서가 갈수록 지역 내 불량배들에 의해 와해된다는 시각을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은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해 금지선(red-line)을 넘었다. 북한은 핵을 탑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인근 해역에서 계산된 위협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시원한 해법도 없는 듯하다. 국제질서가 와해되지는 않았지만 적법 절차가 준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확연해 보인다.

수십 년간 전쟁과 경제난을 겪어 온 미국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동맹과 글로벌 파트너 역시 자국 내 도전 과제로 국제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의 경제 침체는 상당한 국방비 삭감을 가져왔다. 서울에서 캔버라 뉴델리 도쿄까지 아시아 민주국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내심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비용 지출을 내켜하지 않고 있음에도 이런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보수적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마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해석 개헌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사례를 극도로 제한하려 하고 있다. 일본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1% 미만으로 여전히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국제질서가 흔들리면서 생긴 빈틈은 중견국가가 활동할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이자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고학력 인력과 첨단기술을 보유한 첨병(尖兵)이다. 또 활기찬 시민사회를 갖춘 국가로 국제질서와 안보 확립에 기여할 여건을 갖추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을 견제하며 이미 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김정은의 군사력 증대에 맞춰 한미 동맹과 억제력을 강화했고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장에 합의토록 설득했다. 김정은이 4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가운데 박 대통령은 이에 맞선 채찍과 당근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힘써온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구축도 북한 관리에 필요하다. 중국의 대북 압박 능력이 제한적이지만 북한 지도자들에게 우려와 의구심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무모한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

역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 오바마 대통령과 헤이그에서 만났다. 아베 총리가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한일관계는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내년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두 주요 자유시장 국가가 안보, 북한 문제 등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 과제를 두고 협력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불량배들의 행패를 막고 규범과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허브(Hub·미국)-바퀴살(Spoke·한국 등 동맹국)’ 안보모델은 국제사회에서 유사한 가치관을 추구하는 느슨한 국가 간 네트워크로 대체될 수 있다.

새로운 다자 플레이어가 등장한 21세기 국제무대에서 중견국들이 평화와 질서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여전히 언제 리드할지 아는 강한 미국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 질서를 대체할 더 나은 체제가 없는 상황에서 기존 체제의 붕괴를 막고 국제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한국 같은 중견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
#버락 오바마#미국#국제질서#고학력 인력#첨단기술#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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