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 칼럼]경제 더 망치지 않으려면

  • 입력 2005년 7월 1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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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부류가 더 유익할까. 한 경제학자는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드는 식이기 때문에 양쪽이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특별한 상황변화도 없는데 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면 비행기도 만들지 못하고 낙하산도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 경제 발전에는 도움이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5일 국민에게 보낸 서신에는 ‘이런(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경제도 살리고, 부동산도 잡고, 노사문제도 해결하라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경제를 못 살리고, 부동산을 못 잡고, 노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식의 논리다. 국회 의석비율이 달라지지 않는 한 경제가 나아질 수 없다는 비관적 뉘앙스의 대통령 발언은 그 자체가 비정상이다. 모든 기록을 다 뒤져보아도 재·보선에서 여소야대가 된 후 국회의결권이 부족해 통과되지 못한 경제관련 법안은 없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관련 세제가 당정협의에서 무뎌졌다고 불평한 적이 있는데 그건 정부여당 내부의 집안문제였을 뿐이다.

그렇던 노 대통령이 8일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한국 경제의 회복속도가 느리지도 않고 현 경제상황이 잘못됐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낙관적 진단을 내놓았다. 경제가 사흘 사이에 현격히 회복됐을 리는 없다. 발언 말미에 “국민이 경제주체로서 자신감과 낙관적 전망을 갖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을 보면 이날의 경제 관련 발언은 대국민 격려용 성격이 강하다. 같은 상황을 놓고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달랐던 대통령의 말 가운데 국민은 어느 쪽을 더 강하게 기억할까. 연초부터 각종 경제통계가 암울한 미래를 예고할 때도 정부는 “우리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해온 터이다. 그래서 국민은 어느 경제학자의 말처럼 “화장품으로 덮은 상처가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치료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사를 보면 경제주체들은 예언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자기 성취적 예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이 있다. 예컨대 사업이 망할 것이라는 사이비 점쟁이의 예언을 들으면 투자도 않고 주눅 들어 지내다가 실제로 사업을 망치더라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일국의 지도자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경제에 대해 말을 할 때는 심리적으로 영향 받는 국민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신중해야 한다. 좌절케 해서도 안 되고 헛된 꿈을 갖게 해서도 안 된다. 실정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것도 성적 나쁜 학생이 시험감독 탓하는 것처럼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노 대통령은 여대(與大) 상황이 되면 경제가 순항할 것처럼 기대하는데 과연 그럴까. 정부여당의 연합정부 제의에 야당들이 모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여대로 갈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될 때 어떤 정당이 연합정부의 ‘신부’로 입장하느냐에 따라 연정(聯政)이 꾸려 갈 집안 살림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예컨대 최근 국방장관 해임안 표결에서 여당의 손을 들어주었던 민주노동당과의 연정을 상상해 보자. 여당의원들이 민노당의 강령을 자세히 읽어 보았는지 모르지만 이 정당의 강령에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라든지 ‘노동자를 비롯한 생산 주체들이 생산수단을 민주적으로 점유하여…’와 같은 반자본주의적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국민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구현토록 하겠다’는 자당의 정강과 민노당 강령 사이의 큰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정당과 손을 잡을 때 노 대통령은 과연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투자에 나서고 국민이 마음 편히 소비생활을 즐기리라고 생각하는가. 이 정부와 ‘코드’가 다른 나머지 정당들과 연합할 때도 예상되는 갈등 때문에 혼란의 걱정은 마찬가지다.

국민이 낙하산을 준비해야 할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이규민 경제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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