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송호근/이념적 협심증 버리자

  • 입력 2000년 7월 4일 18시 58분


평양에서의 열광이 진정되면서 서울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른바 이념적 진통에서 비롯된 혼란. 그것이 논쟁의 형식을 갖추었다면 좋으련만, 50년 동안 순결처럼 모셔 왔던 냉전 의식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호쾌한 말솜씨와 거칠 것 없는 행동에 홀려 잠시 넋을 잃었다는 데에 대한 본능적 방어 심리 때문에 혼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는 ‘평양’을 아직도 선악, 정사(正邪), 천국과 지옥, 심지어는 인간과 비인간의 이분법으로 규정해야 안심한다. 오죽하면 소설가 황석영이 북한을 방문하고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고 썼을까. 그러니 넋 놓고 열광한 뒤 찾아오는 공허감이 낯설고 그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드는 냉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중앙정보부와 사복 경찰의 감시 눈초리가 번뜩이던 그 시대를 거쳐온 사람이라면 시대가 변했다고 백 번 중얼거려도 냉전 의식 속으로 몸을 숨기고야 말 것이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시민들의 이런 심리 상태를 간파했음인지 보수 세력의 반격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의 신문사 난입 사건은 베트남전 참전의 정의로운 명분을 훼손하는 어떤 논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 ‘노근리사건’이 ‘만의 하나’ 베트남에서도 재현됐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자체 점검하는 것이 신중한 태도일 것이다. 전쟁을 보는 국제사회의 관점은 이제는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집착하는 태도는 사회 지도층도 다를 바 없다. 야당 지도자는 ‘정상회담 이후 사회의 정체성에 일대 혼란이 야기되고 가치의 전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 언론인은 6·25 기념 시가행진을 취소한 정부의 태도가 ‘한국 현대사의 진로를 설정한 위대한 투쟁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증거’라는 외국 기자의 말에 방점을 찍었다.

왜 이러나.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두 정상이 악수를 나누었다면 어떤 가치의 전도 현상은 벌써부터 일어났던 것은 아닌가? 매카시 선풍을 겪었던 미국 국민도 닉슨이 중국 대륙의 문을 두드렸을 때 이미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을 받아들였다. 한낱 외국 기자의 말에 자신을 실어 그것이 마치 국제사회의 지배적 견해인양 침소봉대하는 것은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50년 만의 민족적 쾌거를 폄훼하는 소극적 자세는 아닌가.

그 언론인은 6·25가 강대국의 힘겨루기로 빚어진 민족적 비극이기 전에 ‘위대한 전쟁’이라고 진정 믿고 있는가? 국민을 계도할 정치 지도자라면 ‘이제는 변할 때이기에 정체성의 혼란이 불가피함’을 가르쳐 주는 것, 또는 혼란스러움을 극복할 처방전과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옳았다.

언론 역시 ‘대의를 위해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는 진취적 자세를 취할 시점이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획득하기 위하여 ‘우리부터 흔들리지 않아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우리 특유의 냉전 의식 속에서라면 오히려 신뢰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

6·25 희생자와 실향민, 베트남전 피해자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고 반공이념을 수호하는 국가 기구들이 건재하는 현실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김정일위원장이 통 큰 포즈를 취했다고 해서 한반도의 냉전 이념에 사망 선고를 내려서는 안된다.

그런데 가족과 재산을 빼앗아 간 전쟁의 원한(怨恨) 때문에 세계사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익 투쟁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강한 보수와 약한 진보 세력이 겨우 합의한 인권과 민족 공존 개념으로부터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데올로기가 인류의 삶을 기획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시대는 지났다. 비전향장기수를 돌려보내고 국가보안법을 수정한다고 해서 우리의 정체성이 흔들릴 지경이라면 북한을 길들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념 논쟁이 폭풍처럼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혹시라도 정조관념처럼 박혀 있는 냉전 의식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 자신의 운명을 좌우해온 세계사의 변화 구도에 얼마나 무지하며 그 무지로 인하여 어렵게 일군 일대 전환의 기회가 망가질 수 있음도 동시에 깨달아야 한다. 최근의 공방전과 진통은 이념적 협심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이데올로기 수용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진통은 좌파 혐오증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또 다시 상대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송호근<서울대 사회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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