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교수의 법과 영화사이]검찰측증인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0시 38분


▼<검찰측증인> (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

원작: Agatha Christie,

감독:Billy Wilder

출연: Charles Laughton ( Wilfred Robarts) Tyrone Power( Leonard Voles) Marlene Dietrich (Christine Vole)

살인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결말짓는 행위가 살인이다. 그러므로 살인죄야말로 모든 범죄의 황제다.

영국의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20세기 살인극의 황제이다. 수십 편의 크리스티 영화 중 '검찰측 증인'은 살인과 살인 사이에 거듭되는 반전의 기법이 빛나는 일급 추리극이다.

윌프리드 로바트는 탁월한 변론 기술로 명성이 높은 런던의 법정 변호사(barrister)이다. 심장병으로 와병중인 그는 간호원 핍졸 여사의 엄격하고도 극진한 감시의 벽을 뚫고 이따금씩 시거를 피우는 것을 작은 낙으로 삼고 지낸다.

주인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가슴에 간직하면서도 전문가의 일상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비서는 머리를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모든 사내의 꿈이다.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는 절대로 사건을 맡을 수 없다는 핌졸여사의 선언이 있었고, 그런 핌졸 여사의 감시망을 뚫고 로바트는 살인 사건의 변론을 맡는다. 레너드 보울은 부유한 연상의 여인 에밀리 프렌치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보울의 말인즉 그녀가 자신의 발명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기대하고 사귀었을 뿐이었다라면서 둘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인한다.

그녀가 살해당한 날 밤 그녀의 집에 갔었던 것은 사실이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밤 9시 25분에 귀가했고 그 사실은 아내 크리스틴이 증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프렌치가 유언 속에 8만 파운드의 거액을 보울 앞으로 남긴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울에 대한 의혹이 짙어진다. 보울 자신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극력 부인한다.

재판에서 검찰측은 여러 가지 상황증거를 제시한다. 죽은 프렌치의 혈액형이 O형인데 보울의 소매에 묻은 혈흔과 일치한다. 또한 프렌치의 가정부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틈으로 새 나오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다. 살인이 일어난 시간대에 근접하는 시간이다.

또 다른 정황증거가 있다. 레너드가 젊은 갈색미인과 함께 초 호화판 크루즈에 대해 문의하러 여행사에 들린 여행사에 들린 사실도 밝혀진다. 설상가상으로 놀랍게도 레너드의 아내 크리스틴이 "검찰측 증인"으로 증언대에 선다. 그녀와 레너드는 정식으로 결혼한 사실도 없으며 사건 당일 레너드는 자신이 주장하는 9시 25분이 아닌 10시에 귀가했다고 증언한다. 뿐만 아니라 레너드의 외투소매에 피가 묻어 있었으며 자신이 프렌치를 죽였음을 고백했다고 증언한다.

뜻밖의 증언에 레너드는 거짓말이라고 소리치나 허사이다. 배심원들의 표정은 이미 레너드가 유죄라고 밝히고 있다. 법정변론의 천재 로바츠로서도 속수무책,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최종진술을 앞 둔 바로 전날, 정체불명의 여인이 로바츠에게 접근하여 크리스틴이 "맥스"라는 독일인 사내에게 보낸 연서를 돈을 받고 건네준다. 그 편지에 적힌 크리스틴의 계획인즉 레너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여 그를 제거한 후에 맥스의 품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내용이다. 로버츠는 크리스틴을 증언대에 세워 자신이 편지를 썼다는 자백을 얻어내자 배심은 무죄의 평결을 내린다.

은근히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로바츠를 크리스틴은 냉소한다. 그 정체불명의 여인이 다름 아닌 크리스틴 자신이었고 문제의 연서 또한 자신이 조작한 것이라고 밝힌다. 남편의 살인 재판에서 단순히 알리바이만 주장하는 아내의 증언을 믿을 배심이 어디에 있겠는가는 로바츠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꾸민 연극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검찰측 증인으로 자원하여 남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한 후에 그 증언의 신빙성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증거를 제공하는 교묘한 수단으로 남편을 구출했다는 것이다. 기실 레너드가 살인자임에 분명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이기에 위증을 해서라도 그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때 문제의 그 "갈색 미인"을 대동하고 레너드가 나타난다. 크리스틴에게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진짜 애인을 포옹한다. 늙은 여자를 죽여 만든 돈으로 젊은 여자와 도주하여 새 삶을 설계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크리스틴의 힐난에 레너드는 자신이 군인으로 독일에 복무하면서 죽어 가는 크리스틴을 구출하여 영국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고 맞받는다.

이제 그대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으나 서로 빚을 갚은 것이라고 인생 결산표를 들이댄다. 격노한 크리스틴은 순간적으로 칼을 들어 레너드를 쩔러 죽인다.. "크리스틴이 레너드를 죽였다." (She killed him)라는 외침에 "죽인 것이 아니라 형을 집행한 것이야." (She executed him) 라고 대답하면서 로바츠는 크리스틴을 변론할 것을 자청한다. 또다시 미스 핌졸의 낙담이다.

위기에 처한 검찰을 구하기 위해 국회가 나섰다. 검찰총장과 차장의 탄핵사건을 다루지 못하도록 여당과 국회의장이 짜고 계책을 부렸다고 한다. 결코 그게 아니라고 하나 여러 가지 정황이 불리하다. 배심원인 국민의 표정은 냉랭하다. 누가 레너드가 되고 누가 검찰측 증인이 될지 한 번 크리스티의 법정에 세워보고 싶은 국민이 많다.

안경환<서울대 법대 교수> ahnkw@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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