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버리고 가자]마광수/性표현 억압 '위선의 굴레'벗자

  • 입력 1999년 12월 8일 19시 34분


우리 나라의 상황에 국한해서 얘기하겠다. 20세기를 마치면서 한국에 태어난 내가 가장 뼈아프게 절망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여지껏 끌어안고 있는 ‘수구적 봉건윤리’에기초한‘문화적 촌티’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 촌티’가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하고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이 바로 ‘성에 대한 이중성’과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 억압’이다.

우리는 지금껏 목이 터져라 ‘자유’와 ‘민주’를 외쳐왔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인간해방’을 부르짖으며 갖은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처방을 제시하고 온몸으로 싸워왔다. 그런데도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여지껏 전근대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조선조 말에 문화적 쇄국주의로 우리나라를 망하게 했던 ‘대원군’식 사고방식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러면서도 사대주의에 편승한 ‘탈(脫)근대’와 ‘탈(脫)합리’를 외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지금 상당수 지배엘리트들의 담론 축(軸)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한국은 정말 기이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대주의’와 ‘국수주의’에 양다리 걸치는 이들이 항상 문화적 기득권을 누리며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눈치보기식 기회주의’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수구적 봉건윤리의 핵심은 ‘건강한 성’을 빙자한 ‘생식적 섹스’ 위주의 ‘성기독재(性器獨裁)’에 있고, 성기독재는 항상 ‘유희적 성’이나 ‘개성적 성 취향’을 지향하는 ‘비생식적 성’을 억압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식의 ‘자아분열’을 겪게 되고, 범국민적 자아분열 현상은 온갖 부정부패와 거짓말을 난무하게 만드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00달러정도 되는 지금의 상황이 국민을 ‘유희적 성욕 중심의 행복관’으로 몰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그래야만 문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고, 고부가가치의 문화상품 역시 개발될 수 있다. 모든 문화상품이란 결국 ‘관능적 상상력’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지배엘리트들은 언제나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 정도에 머물렀던 조선조 시절의 윤리를 신성불가침의 전통윤리인양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말하자면 ‘식욕 중심의 행복관’만이 건전한 행복관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편이고 보니 놀이 욕구와 성욕은 지하로 숨어들어 ‘이중적 위선’을 부채질할 수밖에 없고, ‘관능적 끼’에 바탕을 두는 문화산업이나 아이디어 상품(예컨대 독창적 디자인의 패션 등)이 개발될 수 없다. 또한 자연스러운 성욕을 어떻게 해서라도 배설해 보려는 안쓰러운 시도는 음성적 유통구조를 발달시킬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부정부패가 더욱 만연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지수’가 낮은 나라는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돼 있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염두에 둬야 한다.

내가 겪은 ‘즐거운 사라’사건은 이른바 ‘외설’을 이유로 작가를 전격 구속했다는 점에서 한국 최초, 세계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이 ‘민주화’가 드높게 외쳐지던 시절에 발생했다는 것은 한국이 표현의 자유나 개방적 성의식에 있어서만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 억압’은 윤리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합리적 지성의 부재(不在)’와 ‘문화적 세련도’의 부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밝은 21세기를 맞이할 수 있다.

마광수(소설가·연세대 교수)

*다음회 필자는 TV 대하사극 '용의 눈물'을 쓴 방송드라마작가 이환경(李煥慶)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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