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과학 꿈나무 키우기

  • 입력 2001년 10월 31일 18시 49분


모차르트는 타고난 신동이지만 그를 일찌감치 음악에 눈뜨게 해서 여섯살에 미뉴에트, 아홉살에 심포니, 열두살에 오페라를 작곡하게끔 독려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리처드 파인먼(1918∼1988) 역시 부모의 조기 교육에 힘입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대표적인 사례다.

▼지식 암기보다 호기심 자극▼

과학자로는 드물게 많은 저술을 남겨 우리나라에도 서너 권이 번역 출간된 바 있는 파인먼은 가령 ‘발견하는 즐거움’과 같은 책에서 자신을 과학자로 키우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유년 시절에 보여준 관심과 애정을 자랑스럽게 회고하고 있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과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내 피 속에 과학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 덕분이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 아이가 아들이라면 과학자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작곡가였지만 파인먼의 아버지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사업가였으며 제복회사의 판매관리인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학을 무척 좋아했으며 과학책을 즐겨 읽었다. 그러나 파인먼에게 과학자가 되라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파인먼은 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 세상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가를 가르쳐주었다고 술회한다.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브리태니카백과사전을 읽어줄 때나, 손을 잡고 숲 속을 거닐며 새들에 관해 설명할 때 아버지는 파인먼에게 결코 지식의 암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파인먼은 이러한 부친의 가르침 덕분에 일생동안 과학에 심취할 수 있었음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파인먼의 사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식이나 동식물 이름을 외우는 우리나라 과학 교육 방법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사이언스 북스타트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월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이 발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과학기술인들이 앞장서서 우선 농어촌 지역의 초등학생부터 시작해 북한과 옌볜지역의 아이들에게까지 과학 도서를 보내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워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6월 김 추기경의 후원금으로 민통선 안의 대성동초등학교에 100권의 과학도서를 기증했으며 7월에는 전국 9개도 20개군 316개 초등학교 1학년 학생 1만650명에게 과학도서 한 권씩이 전달됐다. 이들 학교의 명단에는 한 반의 학생 수가 열 명도 안 되는 경기 연천군 군남면의 화진초등, 강원 인제군 북면의 월학초등, 충남 서천군 비인면의 비남초등, 경북 울릉군 서면의 태하초등, 전남 고흥군 남양면의 망주초등, 제주 남제주군의 가파초등학교 등이 포함돼 있다.

벽지와 낙도의 어린이들이 과학 도서를 통해 파인먼처럼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면 사이언스 북스타트 운동은 과학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를 가꾸는 값진 시도로 자리매김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운동의 발의자가 현직 장관이기 때문에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국회의원인 김영환 장관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만도 하다. 이런 와중에 김 장관의 과학동시집인 ‘방귀에 불이 붙을까요?’가 출간돼 김 장관 본인이나 사이언스 북스타트 운동 당사자 모두에게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집인 ‘똥 먹는 아빠’를 펴낸 시인답게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어려운 과학을 재미있는 동시로 풀어냄으로써 그가 어린이들은 물론 과학도 사랑하고 있음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과학도서보내기 운동 주목▼

이 시집에는 아르키메데스, 빌 게이츠와 함께 장영실 김정호가 나오며 인공강우 착시현상 소립미자가 소개된다. ‘뇌 나라 국무회의’나 ‘대장균의 기자회견’도 기발하지만 ‘고추와 지렁이’에서 ‘지렁이는 참 무서운 선생님이다/환경보호를 가르치는 자연선생님’이라는 대목이 돋보인다. 먼 훗날 인제군 또는 울릉군에서 배출된 세계적 과학자가 어린 시절 사이언스 북스타트 운동에서 보낸 책을 읽고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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