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윤미용]국악이 흐르는 TV 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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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용 전 국악방송 이사장·전 국립국악원 원장
윤미용 전 국악방송 이사장·전 국립국악원 원장
“살다 살다 이런 날도 있구먼,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나네.”

2001년 3월 2일 ‘국악방송’이 개국하던 날 박동진 명창(2003년 작고)께서 필자의 손을 잡으며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국악인들에게는 오랫동안 갈망하던 숙원사업이었기에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국악방송, 대중화-세계화에 기여

올해로 10주년이 된 국악방송의 개국 과정은 국악의 현실을 반영하듯 험난한 여정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 축구경기와 같은 세계적인 축제에서 국악을 새롭게 선보이며 국민의 국악 인식은 많이 개선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국악의 예술적 가치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국악을 여전히 홀대하고 있다. 한때 공영방송의 대표는 국악 프로그램을 방송하라는 문화계의 요구에 “시청률이 1%도 안 되는데 어떻게 방송을 하는가”라고 했다. 시청률(청취율)은 예나 지금이나 방송계의 지상목표가 되어 국악 프로를 외면하고 있다.

국악방송은 국악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방송은 국악을 이해하는 손쉽고도 소중한 수단이다. 국악방송은 서울을 포함하여 4개의 방송권역을 확보하였다. 청취 가능 인구는 약 2400만 명으로 국민의 45%에 해당한다. 청취행태 조사 결과 청취도는 약 2%로 청취 가능 인구로 환산할 때 매일 48만 명이 국악방송을 듣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연장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방송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24시간 방송되는 국악방송은 국악음원 4만7000곡을 데이터베이스(DB)화하였으며 자체 프로그램을 해외 교포방송국에 보급하고, 많은 교육 자료를 전국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제 국악방송은 모든 국민이 청취할 수 있도록 전국화해야 한다. 국악을 대중화하고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국악TV’ 개국도 서둘러야 한다. 예술성이 높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창작품으로 이끌어내며, 세계 시장에 효과적으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TV 방송이 절실하다. 국악TV는 국민의 편의와 중요성을 감안하여 한국정책방송 KTV나 아리랑TV와 같이 공공채널로 지정하여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될 국악TV는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공중파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에서 원할 때 언제라도 제공할 수 있는 큰마음을 가져야 한다.

‘국악방송’은 민법상 재단법인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라디오방송의 전국화와 TV 방송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TV 방송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고와 방송발전기금 외에 ‘교육방송’과 같이 특수법인화하여, 방송법상 시청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전국화를 위한 라디오 주파수를 우선적으로 배정받기 위해서도 특수법인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확고한 정책 의지가 요구되는 점이다.

사라져가는 무형문화재 보존의 길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는 음악 등 8개 분야로 나뉘며, 100여 개 종목에 200여 명의 보유자가 활동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으로 가장 수준 높은 종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같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종목들은 원형 보존과 전승 활동이 원활한 반면 농요, 발탈, 망건장 같은 종목들은 매우 취약하다. 1970년대 초에 지정되었던 ‘시나위’는 전승자가 없어 해제된 지 오래다. 일제강점기에는 문화 말살정책으로, 광복 후에는 서양문화를 맹종하다 귀중한 민요 등을 잃었다. 지금도 방치되다가 사라지는 문화재감들이 있을 수 있다. 무형문화재의 원형 보존과 균형 발전 그리고 완벽한 기록을 위해서 ‘국악TV’는 아주 적합한 도구라 하겠다.

국악의 해외공연 시작은 대체로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서이다. 본격적인 해외공연은 1970년대 들어 국립국악원이 유럽과 미주에서 장기 공연을 하며 활발해졌다. 외국에서는 궁중음악은 ‘품격 있는 예술’로, 민속음악은 ‘신명나는 예술’로 평가한다. 특히 한국이 중국, 일본과는 다른 ‘독창적인 예술’을 갖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소희 명창(1995년 작고)은 1974년 미국의 카네기홀에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국내에선 괄시받던 판소리가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에 가니까 그렇게 인기가 있습디다. 요란한 기립박수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라고 했다. ‘종묘제례악’을 포함해 11개 종목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만 보아도 한국 무형문화재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얼마나 우수한가를 잘 알 수 있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탈 때 우리들 가슴에서는 충격과 자책의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국악과 같은 소중한 무형문화재는 소리 없이 사라져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다. 한 번 사라진 국악은 다시는 재생할 수 없다. 국악방송의 활성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윤미용 전 국악방송 이사장·전 국립국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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