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방민호]말과 글의 타락

  • 입력 2008년 10월 4일 03시 00분


오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혼란스럽고 어두워 보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어제와 오늘 최진실이라는 한 배우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죽음의 원인이 정녕 무엇인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아마도 우울증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면에 말과 글의 타락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가로놓여 있음을 도외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필자는 대략 노무현 정부 시대 때부터 본격화된, 인터넷을 통한 비난과 공격의 언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표명해 왔다. 인터넷의 민주적 가치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채 현상적이고 시사적인 사건에 얽매이는 언어의 한계와 부작용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향한 공격의 언어가 자신에 대한 성찰을 수반하지 못할 때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진실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다.

말과 글의 타락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실로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말과 글의 타락을 대변하는 중심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문학의 ‘타락’, 문학의 가치 저하다. 최근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참석한 일본의 한 여성작가는 일본에 소개된 한국문학이 대체로 대중문학 위주여서 아쉽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학을 편의상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으로 나눈다면 과연 오늘의 한국문학에서 본격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는 작품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한국문학에 본격문학임을 자임할 수 있는 문학이 과연 얼마나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0여 년간에 걸쳐 한국문학은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가르는 관행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평가를 내려왔다. 물론 반성 없는 관행은 재평가돼야 한다. 문학이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일은 중요하다. 또 대중적인 문학이 깊이 면에서 항상 결핍되기 마련이라는 생각도 옳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편향적 평가 일변도에는 문학적 깊이에 대한 사유의 영역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못했던 것 같다.

필자가 보건대 이런 편향적 시각이 오랫동안 군림하다시피 해온 결과는 참담하다. 감각과 유행, 젊음, 세련됨, 대중성, 상업적 유인 같은 요소가 중시되면서 많은 파탄이 일어났다. 문학 제도 또는 권력의 권위에 즐겨 기대거나 스스로 종속되고도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작가가 적지만은 않다.

또 그 일부는 작가의 고유성이라는 ‘낭만적’ 명제를 부인하거나 외면하면서 조립가로서의 작가라는 새롭고도 편리한 개념에 만족하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현대문학의 상호텍스트적 성격 운운은 빈번하게 돌출되곤 하는 표절 문제를 변명하는 수단이 되고, 어느 경우에는 현실적인 힘의 논리로 변명의 필요성조차 외면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인터넷은 고독한 상상의 과정을 손쉽게 대리해 줄 수 있는 저장고 역할을 떠맡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문학은 과연 무엇을 쓰고 읽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혼란스럽고도 어두운 현실은 성찰적 언어의 깊이를 절실하게 요청하는 것 같다. 혼란과 어둠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적시하는 행위는 어쩌면 언어의 낭비가 되어버릴 것 같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지금 시대의 위선과 거짓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봄부터 이 가을까지 우리는 이것을 목도해 왔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에서나 문학에서나 같다.

과연 코끼리의 상아처럼 희고 단단하게 빛나는 진실의 힘을 가진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대단한 상금을 과시하는 현란한 문학 제도의 허상 아래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쓰고 읽어야 하는가?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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