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보광]하안거(夏安居), 나를 찾는다

  • 입력 2007년 6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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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사찰은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8일)의 축제 분위기가 채 가시기 전에 안거 준비로 차분해진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올해는 5월 31일)에 결제(結制)로 시작해 음력 7월 15일(올해는 8월 27일)에 해제(解制)로 끝난다. 3개월의 수행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살펴보는 기간이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방하착(放下着)을 하고 오로지 ‘나는 누구인가?’ ‘이 무엇인고?’ ‘이 뭐고?’ ‘무(無)’라는 화두(話頭)를 가지고 밤낮없이 씨름한다. 화두에 매달려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볼 틈이 없다. 천 길 낭떠러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을 뿐이다.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어 잠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게 된다. 큰기침은 참아야 하고, 단침은 삼켜야 한다. 수십 명 대중이 한 선원에 기거하지만 숨소리까지도 죄송할 정도로 적막과 고요에 젖어 든다.

초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기간이다. 오전 2시경에 일어나 준비를 해 3시부터 50분 동안 앉아서 참선(參禪)을 한 후 10분 동안 걸으면서 경행(經行)을 한다. 이렇게 하루 10시간을 참선에 몰두하고,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든다. 짜인 일과에 적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오로지 앉아만 있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졸면 장군죽비가 날아와 어깨를 후려친다. 정적을 깨뜨리는 죽비 소리는 천둥과도 같으며 번개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고, 졸음에 정신은 혼미해지고, 온몸이 뒤틀린다. 한 시간을 앉아 있기가 하루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잊었던 옛 생각은 다시 새록새록 돋아나고, 온갖 번뇌 망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이 되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자신의 오롯한 경계에 들게 된다. 삼매경에 들면 법열을 느끼고, 마음이 환희로 가득해진다.

올여름에도 하안거를 시작했다. 조계종에서는 선원 100여 곳에서 스님 2200여 명이 안거에 들어갔다. 이러한 안거는 부처님 당시에 시작돼 2600여 년간 이어져 온 불교의 전통적 수행 방법이다. 본래는 인도에서 1년에 한 번씩 우기(雨期)에 스님들이 외출을 삼가고 한곳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한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북방 대승불교로 오면서 1년에 2차례 여름의 하안거와 겨울의 동안거로 나누어 행하고 있다. 선종(禪宗)에서는 대단히 중시해 왔다. 오늘날 대승불교권에서 안거에 철저한 나라는 한국이다. 중국 불교의 전통은 문화혁명으로 소멸됐고, 일본 불교는 재가(在家)의 생활불교로 변했다. 한국 불교는 전통적인 대승불교 교단을 그대로 계승해 오면서 안거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는 스님들만이 입방이 허용되는 안거를 해 왔지만, 최근에는 재가자들을 위한 선원이 개설돼 안거에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는 불교 신자뿐 아니라 모든 종교를 초월해 참여의 기회가 열려 있다. 외국인을 위한 국제선원이 개설돼 세계 각국에서 한국 불교의 안거에 동참하고자 희망하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함으로써 자신은 돌이켜 보지 못하고 있다. 밀려오는 정보를 처리하지 못해 판단에 혼돈이 생기고, 많은 말을 하다 보니 실수가 잦다. 남에 대해서는 철저히 평가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한번도 자신을 돌이켜 보지 않았으니 알 리가 만무하다. 단 몇 분간이라도 고요히 정좌해 본 적이 있는가? 하안거 철을 맞아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나는 누구인지 자신을 찾는 여유를 가져 보자.

보 광 동국대 교수 정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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