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公교육 정상화만이 정답

  • 입력 2000년 5월 5일 20시 03분


전국적 화제는 단연 ‘드라마 린다 김’이다. 우선 배역이 화려하다. 당시의 국방장관 국회국방위원장 장관출신의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한 재미교포 미녀 로비스트의 등장만으로도 초호화 캐스팅이란 평을 듣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로비의 대상은 천문학적 액수의 초현대 전자무기와 장비, 여기에 로비스트에게 장관 또는 전직장관들이 러브레터를 보낸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관객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 정부 때의 일이, 그것도 이미 한차례 내사를 거쳐 부분적으로는 사법처리된 사건이 어째 이 시점에서 새롭게 불거져 나올까? 혹시 김대중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면서 ‘하야’를 요구한 김영삼 전 대통령 ‘길들이기’가 준비되는 과정에서 취재진에 포착된 것은 아닐까? 사실을 전혀 모르는 일반 관객들은 실체와는 무관하게 이런저런 추리를 하다보니 여론의 흐름은 자연히 ‘철저한 재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그 하나로 귀결된다. 필자도 전면재수사를 요구한다.

▼수업의 하향평준화 막아야▼

그러나 더 심각하게 토론하고 싶은 주제는 과외금지를 위헌이라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이다. 겉으로만 보아 헌재의 결정은 ‘고액과외는 여전히 금지되고 교원의 과외수업은 여전히 제재되지만 원론적으로 과외공부는 허용된다’는 취지의, 과외공부에 관한 결정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어째서 과외공부가 성행하게 됐고 어째서 법으로 금지되기에 이르렀으며, 그런데도 어째서 여전히 비밀과외와 학원과외가 성행했던가를 따져볼 때, 이 결정은 그동안 우리 공교육이 안고 있던 근원적 문제점에 직접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지난 수십년 동안 역대정부는 교육을 교육 그 자체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사회형평주의 또는 평균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오늘날에는 평생교육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는 추세여서 일반 시민에 대한 교육 역시 중요해졌으나, 일차적으로 우리 자녀들을 학문과 예술의 발전에 발맞춰 잘 가르침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한걸음 더 나아가 인류와 국제사회에 자기 나름으로 이바지하고 봉사할 수 있는 인재로 길러내는 일이다.

여기에는 수월성(秀越性)이 중시되며 선의의 경쟁이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다. 공교육이 이 점을 경시하고 평균주의를 중시하게 되는 경우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중고등학교 평준화 이후 학교현장에서 확인해 왔다. 모든 국민에게 고루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명제와 경쟁력을 지닌 양질의 교육을 베풀어주어야 한다는 명제를 뒤섞어버린 데서 우리 공교육은 오로지 하향평준화 하나만을 향해 치달려 오게 된 것이다. 이제는 과외근절책의 하나로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으니 자칫 잘못하면 하향평준화의 파도가 대학마저 집어삼킬지 모르겠다.

하향평준화가 사실상 국가의 교육목표처럼 돼버리니 수업내용의 질적 상향을 당연히 바라는 학부모와 학생은 공교육 밖에서 해결책을 찾기에 이르렀다. 거기서 과외열풍이 불가피해진 것임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따라서 과외열풍을 끄는 해결책은 기본적으로 하향평준화에 제동을 걸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우선 교육비의 국민총생산(GNP)대비 6%의 공약이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교육시설과 교육환경의 개선 등 공교육의 하드웨어를 충실하게 만들어주고, 우수교원의 확보와 교원의 정부책임 아래서의 연수 및 보수 인상을 포함한 사기진작 등을 통해 공교육의 소프트웨어를 내실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동시에 21세기 지식기반정보화시대에 걸맞게 교육의 방식과 내용을 바꿔주어야 한다. 교직사회의 자정(自淨)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 일들은 교육부 혼자의 힘으로 실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범정부적 차원에서, 그리고 여야의 국회에서의 공동노력의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범정부-국회차원 노력 필요▼

사람이 내장과 뼈에 병이 생기면 얼굴빛이 달라진다. 이 때 내장과 뼈를 치료하려 하지 않고 얼굴빛만 고쳐보려 하면 환자는 살아나기 힘들다. 과외열풍은 말하자면 우리 공교육의 병이 고황에 들었기에 그것을 반영하는 좋지 못한 얼굴색이건만, 정부가 고액과외 단속만 부르짖는 것은 피부관리사의 역할만 수행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기대책은 세우되 국가적 차원에서 공교육 살리는 중장기적 과제에 진지하게 매달려야 하겠다.

김학준(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 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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