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가족복지 투자’를 위한 추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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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유례없는 재난적 저출산… 선진국 1.4~2명, 韓은 1명도 안돼
초등학교 보내면 ‘돌봄 절벽’ 시작, 정부 수천억 쓴다지만 턱없이 부족
육아-돌봄 비용, 공동체가 부담해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해 정부는 예상보다 많은 25조4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결과적으로 긴축정책을 쓴 셈이다. 경제가 불안한 지금, 예기치 못한 긴축재정 기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추경을 검토해야 한다. 미세먼지 핑계를 댈 필요도 없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재난적 출산율(0.98명) 하나만 해도 추경 요건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추경을 한다면 무엇보다 저출산 해결에 돈을 써야 한다. “과거 13년간 저출산 대책에 143조 원을 쏟아부었는데도 효과가 없다. 쓸 만큼 썼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어떤 숫자를 부풀릴 때 즐겨 쓰는 방법이 ‘몇 년간 얼마를 썼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른 예산, 예컨대 국방비에 대해선 “10년간 371조 원 썼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유독 저출산 예산만 ‘부풀리기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아동수당도 그렇다. 세금 부담을 말할 땐 부풀리기 화법, 양육비 절감 효과를 말할 땐 ‘축소 화법’을 즐겨 쓴다. “2조2000억 원이나 써서 한 달에 고작 10만 원 준다고 아이를 더 낳겠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에게 누군가가 “당신 월급에서 고작 10만 원 뺀다고 일을 그만둘 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매달 월급을 10만 원씩 깎자고 하면 뭐라 답할까.

그나마 저출산 예산 중엔 보육시설 운영비같이 저출산이 아니어도 쓸 돈이 많다. 숟가락 얹기 식으로 끼워 넣은 항목도 있다. 해외취업 지원 사업, 대학창업펀드 조성 사업 등이 포함돼 부풀려진 저출산 예산이 23조4000억 원이다. 국내총생산의 1.26%다. 축소 화법을 쓰면 국민 1인당 하루에 1233원, 시내버스 요금 정도다.

객관적 비교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통계를 보면 한국은 가족복지(아동수당 및 육아·돌봄 지원) 예산에 국내총생산의 1.18%(2017년)를 쓴다. 일본은 1.31%(2015년), 이탈리아는 1.96%, 독일은 2.22%를 쓰는데, 이들의 출산율은 1.4명 수준이다. 반면 비교적 과감한 프랑스(2.94%), 영국(3.47%), 스웨덴(3.54%)에서는 출산율이 2.0명 근처로 회복됐다. 돈 쓴 만큼 효과를 본다. 아이 키우는 비용을 공동체가 많이 부담하면 출산율이 올라가고 개인이 많이 부담하면 출산율이 내려간다는 기본 원리를 무시하지 말자.

일각에선 이젠 결혼만 하면 둘씩은 낳지 않느냐고도 한다. 기혼 여성의 평생 자녀 수 예측치인 ‘유배우 출산율’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예컨대 40세에 출산한 기혼 여성이 통계에 새로 잡히면, 기존 기혼 여성들이 40세에 출산할 확률도 덩달아 높아진 것으로 평가돼 자녀 수 예측치가 올라간다. ‘템포 효과’, 즉 혼인 및 출산 연령이 높아질 때 생기는 일종의 착시효과다. 실제 출산을 완료한 40대 기혼 여성들의 평균 자녀 수는 줄곧 떨어져 이젠 두 명에 현저히 못 미친다. 젊은 부부일수록 더 힘든 상황이다. 결혼장벽을 낮추는 일은 그것대로 중요하지만 높은 양육비와 경력 단절 가능성이 결혼 생활의 기대비용을 높여 출산장벽과 결혼장벽을 동시에 높이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 저출산 대책에서 시급한 분야는 돌봄체계다. 힘겨운 영유아기를 거쳐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면 ‘돌봄절벽’이 기다린다. 돈도 문제지만 시간은 돈으로 사기도 어렵다. 많은 여성이 경력 단절로 내몰리는 이유다. 추가 출산은 미련 없이 포기한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다. 이 부분을 해결해 주면 경력 단절을 막으면서 저출산도 완화할 수 있다. 돌봄 일자리도 창출된다. 양질의 온종일 돌봄체계는 사교육 의존도를 줄여 불평등을 완화한다. 정부는 2022년까지 연평균 2200억 원을 써서 돌봄 수혜자를 33만 명에서 53만 명으로 늘린다고 한다. 양적·질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목표다.

돌봄체계에 대해 중산층 이상 가정을 위한 ‘역진적’ 정책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게 문제면 고소득자에겐 실비로 이용료를 받으면 된다. 중요한 건 빈틈없는 공급 체계다. 이런 체계가 없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이 저소득 가정 아이들이다.

저출산 대책이 마음에 안 들면 가족복지라고 부르자. 그것도 싫으면 가족투자라고 하자.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초적 투자를 더 이상 홀대하지 말자.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저출산#돌봄 절벽#돌봄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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