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용주]광주, 이제는 치유의 공동체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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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면 우리 국민은 심한 분노를 느낍니다. “위안부는 필요했다”거나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며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망언이 심각한 이유는, 그들의 그런 태도가 일제 식민지 시절의 고통과 아픔을 자꾸 헤집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런 것입니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나 가해자 처벌 없이 지나가면, 그 사건은 우리에게 계속 생채기를 내는 것입니다.

나쁜 역사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망언을 비난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방송은 대통령도 참석하여 국가기념일로 치르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탈북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냈습니다.

작년에 국가정보원에서는 탈북자들을 데려다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5·18민주화운동은 북한이 개입했다”는 내용의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특정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5월 희생자를 ‘홍어’로, 5·18민주화운동은 북한군 소행이라는 주장을 수만 건 게시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고 관용여권으로 외국 여행을 다닙니다.

1980년 5월로부터 3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광주는 이렇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계시는 분들은 “지금도 이렇게 언론이고 뭐고 ‘5·18은 빨갱이 집단이 한 것이다, 너희들은 빨갱이다’ 그러는데 어떻게 치유가 되겠느냐”며 한숨을 내쉽니다. 1980년 당시의 상처조차 제대로 아물지 않았는데, 또다시 상처를 헤집는 것입니다.

5·18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후유증은 당시 가족을 잃거나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상황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분들도 해마다 5월이 되면 불안해지고, 답답해지고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바로 ‘5월 증후군’입니다.

‘광주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최근 광주시민 3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조사에서 55.8%가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5월이 되면 5·18에 대한 생각이나 그림이 떠오른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43.2%는 ‘5·18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면 분노, 슬픔, 죄의식 등 매우 강한 정서를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33년이 지났어도 절반 이상의 광주시민이 ‘5월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사 결과는 광주시민 모두가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하는 ‘트라우마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시민들의 ‘5월 증후군’을 치유하기 위해 5·18 33주년 행사기간 동안 ‘5월 심리치유이동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5월 심리치유이동센터에서는 시민들의 심리 상태 점검을 위한 간이 검사와 개인 상담을 실시하고, 필요하면 전문적 치유 프로그램으로 연계합니다. 또한 앞으로도 ‘치유의 인문학’ 등 시민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광주를 치유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려 합니다.

그러나 치유를 위한 광주트라우마센터의 노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5·18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고 더이상의 왜곡과 비하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시민 개개인에게, 국가는 궁극적으로 나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1980년 5월, 그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국가로부터 배반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한 것입니다. 국가 권력에 의한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하며 그럴 때에야 온전한 사회적 존재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위안부에 대한 망언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일부 방송의 망언이 오버랩되는 현실을 보며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 즉 진실 규명과 가해자 사과라는 정의의 실현이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5·18민주화운동#광주#일본 식민지#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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