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호]8·15를 세계의 눈으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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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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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국제정치·인권대사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국제정치·인권대사
8·15광복은 독립열사들의 피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세계사적 흐름과 맞물려 있는 국제정치질서가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8·15를 ‘안’에서 ‘밖’을 보는 좁은 시각이 아니라 ‘밖’에서 진행된 국제정치질서의 변화의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광복이후 격렬하게 요동친 한반도

3·1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자극받아 독립을 위해 전 민족이 일치단결한 사건이었다. 광복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1년 8월 ‘대서양헌장’에 그 맥이 닿아 있다. 대서양헌장은 1941년 8월 14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민족자결 등의 원칙을 천명한 공동선언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 대서양헌장의 정신에 따라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하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에 기초한 대한민국을 세웠다.

구한말 이후 한반도는 세계사적 전환기마다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의 영향으로부터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구한말 대영제국의 패권질서에 제정러시아가 도전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첫 번째 패권경쟁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거문도가 점령당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한반도는 열강의 전쟁터로 변했다. 당시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한 조선왕조는 일제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였다. 냉전이라는 이름하에 전개된 미-소 패권경쟁의 소용돌이는 또다시 한반도를 덮쳤다. 그 여파로 냉전 초기 한반도는 분단되고 말았다. 뒤이어 발생한 6·25전쟁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역사상 전례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또다시 세 번째 패권경쟁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한국을 비롯해 주변 국가 모두가 지도자를 교체한다. 이런 국내 정치적 변화와 함께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의 파도가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거칠게 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패권경쟁의 길로 들어선 지 오래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 결과는 대한민국의 미래, 한반도 통일, 동북아 지역질서, 21세기 국제정치질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에 대처하고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국가전략을 마련하고 국력을 결집해나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국론통일과 국력결집에 실패했을 때 패권 경쟁기 우리 민족은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구한말 패권 경쟁기에는 친청파 친일파 친러파 친미파로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엄청난 국론분열과 국력 소진으로 망국의 비극적 결과를 맞았다. 또 광복 이후 냉전질서로 이행되는 두 번째 패권 경쟁기에는 좌우대립과 신탁통치를 둘러싼 노선대립으로 급기야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고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산업화-민주화 동시에 이룬 한국

건국 후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는 기적을 만든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이상 주변 열강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국제정치 무대의 엑스트라가 아니다. 주연은 아니더라도 미국 일본 유럽연합 중국 등 국제정치의 주연급들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빛나는 조연’의 위치를 확보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은 미중 패권경쟁과 급변하는 국제정세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안’에서 밖을 보는 시각이 아니라 밖에서 한국을 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국제정치·인권대사
#8·15#독립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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