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최협/초롱이의 행복

  • 입력 1997년 2월 22일 19시 52분


개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작은 강아지를 집에서 기른지 2년이 넘었다. 처음 데려왔을 때 하얀 털에 유난히 크고 까만 눈을 보고 아이들이 지어 준 이름은 「초롱이」이다. 그 동안 초롱이는 우리 가족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 특히 잠시 헤어졌다가 만날 때 반기는 모습은 개에 별관심을 갖지 않는 나마저 감동케 만든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초롱이를 귀여워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즉 초롱이가 가장 좋아하는 바깥 나들이를 시켜 줄 시간적 여유가 아무에게도 없는 것이다. 사실 초롱이는 집에서 혼자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부쩍 발코니쪽 유리문 앞에서 밖을 보며 엎드려 꼼짝 안하는 초롱이가 측은한 생각이 든다. 더구나 약 6개월 전부터 우리동네 아파트와 주택가를 싸다니는 초롱이 비슷한 녀석이 있음을 안 뒤부터 더욱 그런 생각을 갖게 됐다. 주인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작은 개는 출퇴근길에 가끔 만나곤 하는데 더러운 겉모습과는 달리 무척이나 활기차 보인다. 그래서 우리 딸아이는 이 개에게 「해피」라는 이름을 붙였다. 개를 사랑한다는 미국 같으면 주인없이 돌아다니는 개는 잡아다가 입양을 시키거나 아니면 죽이기 때문에 「해피」처럼 오랫동안 바깥 세상을 즐길 수 없었겠지만 한국에는 그러한 제도가 없기에 다행인 셈이다. 「해피」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보아 먹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해피가 동리의 다른 개들과 즐겁게 뛰노는 것을 보며 우리 초롱이보다 더욱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집안의 초롱이는 아늑한 곳에서 가끔 목욕도 하고 멋을 부리지만 갇혀서 지내는 답답한 생활이 아닌가. 결국 초롱이를 사랑한다는 우리가족은 사람을 위한 동물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에서 개고기를 들먹이며 한국인은 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개사랑인지 되물어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옆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초롱이의 까만 눈동자가 오늘은 더욱 애처로워 보인다. 최협<전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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