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윤형섭/불행한 대통령

  • 입력 1997년 11월 12일 19시 51분


「진도개 아홉마리와 도사견 아홉마리가 야구시합을 하면 어느 쪽이 이기겠는가」. 난센스 퀴즈다. 그 정답은 「원체 개판이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 없다」이다. 오늘에 와서 생각하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오늘의 한국 정치판은 도대체 무슨 판이기에 이처럼 배신과 위약과 사욕으로 얼룩진, 그래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일까. ▼ 국민들의 불안과 탄식 ▼ 요즘 시중에서 흔히 듣게 되는 식자층의 대화 첫머리는 『이거, 어떻게 되어 가는 겁니까』 또는 『아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좀더 심해지면 『이러다가 나라가 폭삭 가라앉는 것 아닙니까』 등이다. 그러나 누구도 정답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한국정치의 부도덕성과 비논리가 극도로 독을 뿜어대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국민 앞에서 외쳤던 그 많은 정의롭고 애국적인 주장들이 얼마나 위선적인 속빈 강정이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표만 보인다. 『우째 이런 일이…』하고 임기중에 이미 수차례에 걸쳐 육해공의 대참사가 있을 때마다 탄식을 내뱉었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과 아들을 교도소로 보내야 했던, 누가 봐도 역사상 가장 불행한 대통령이다. 바로 그 불행한 대통령이 최근에는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서 대선정국이 지금처럼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 인신공격과 과열타락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차기 대통령은 참으로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지금의 대선정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규정하고 구국의 차원에서 국가공권력을 총동원하겠다는 결의마저 표명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벌어질 상황은 누구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사람은 남을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는 속어가 있다. 김대통령은 92년 대선을 앞두고 노대통령이 자신을 극도로 격분케 했던 일련의 조치들, 즉 대통령후보의 당내 자유경선, 대통령의 탈당, 엄정중립선언등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후보가 된 다음 노태우정권을 비난하며 차별화했던 바로 그대로를 이회창(李會昌)후보가 김영삼정부를 상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불행한 대통령을 갖고 있는 국민은 결코 행복할 수 없으며 당연히 불안하다. 우리는 국민 앞에 탄식하고 사죄하는 불행한 대통령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 15대 대선은 행복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이 땅의 민주주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 이 땅에는 집요한 권력욕과 소집단 이기주의가 난무하면서 고차원의 정략과 득표의 전략만이 판을 치고 있다. 그동안 그처럼 열변을 토해왔던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사명감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철학도 알고 보니 한낱 가식일 뿐이다. ▼ 후보들 治國철학 있는지 ▼ 요즘의 대선정국은 이론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경험적으로도 입증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정형의 괴물이다. 괴물같은 정치판의 한복판에는 자의든 타의든 박정희(朴正熙) 김영삼 두 대통령의 얼굴이, 그리고는 간혹 전,노 두 전직대통령의 얼굴이 각 후보자의 얼굴과 포개진 채 디스코텍의 천장에 매달린 회전전광처럼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그 밑에서 악단이 3김청산, 정권교체, 세대교체 등 실로 내용없는 선거구호만을 요란스럽게 연주하고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했다. 김대통령은 더이상 『우째 이런일이…』를반복하는불행한 대통령이어서는안된다.책임있는결단으로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만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을 것이며 국민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윤형섭(건국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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