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권상/「권력구조 개편」국민적 토론을…

  • 입력 1997년 11월 6일 20시 13분


「한국의 대통령은 강력하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 대통령 한 사람의 의견에 국회도 정부도 그대로 따라 움직인다. 조선(朝鮮)조의 평균적인 임금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무엇이나 해결할 수 있는 만능적 존재다. 대통령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불경이 된다」. 얼마전까지 대통령비서관을 지낸 어느 정치학자가 「신동아」 11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렇다. 우리는 이름만 「공화국」의 대통령이지 실은 조선시대 전제군주 이상의 제왕(帝王)적 대통령의 통치에서 50년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물론 정부를 견제하는 의회와 사법부가 있고 국민의사를 형성, 반영하는 정당이나 언론이 있으나 늘 종속적 역할에 그쳤다. ▼ 권력 독점 체제의 한계 이른바 「문민시대」에 들어서 그 기능이 크게 활발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작년말 노동법 불법날치기 통과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할 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을 견제하는 입법부가 아니었다. 1백54명의 여당의원이 그야말로 「어명」에 따라 크리스마스 다음날 이른 새벽 의사당에 집결, 의장의 명령 일하에 불법날치기를 감행하지 않았던가. 문민시대에 와서도 대통령의 한마디는 이렇듯 법 이상이었다. 그 결과는 만성적 정치적 갈등이었고 역대 대통령은 예외없이 독선 독주 독재의 길을 걷다가 쫓겨나거나 피살되거나 형무소에 갔고 「문민대통령」의 경우는 재임중 아들을 형무소에 보내야 했다. 대통령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고 국가운명을 결정짓는 그런 제도하에 정치는 곧 사생결단의 「전쟁」이 되기 쉽고 이번 대통령선거만 하더라도 절대권력을 쟁취하려는 험악한 전쟁 아닌 전쟁이 6개월 이상 벌어지고 있다. 모든 정치악의 근원은 권력 독점, 「승리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여는데 우리는 과연 이렇듯 소모적이고 분열지향적인 대통령제에 연연할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분산하여 협조지향적인 다른 체제를 진지하게 모색할 것인지 결단의 시기에 왔다. ▼ 운영의 묘가 설패 열쇠 권력의 일극 집중을 시정하겠다는 데는 여야간 이의가 없어 보인다. 여당의 이회창후보는 한때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까지 검토하겠다고 말했고 「책임총리제」로 대통령의 독주를 막겠다고 공약했다. 현행 헌법의 내각제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내각제를 고리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냈다. 문제는 내각제라고 해서 「민주적인 정치안정」에 만능약이냐는 회의론도 있다는 점이다. 정당제도가 확고하지 못한 우리 정치현실에서 단일정당이 안정세력을 얻을 수 있을는지, 그렇지 못할 경우 정당간 이합집산으로 정권이 자주 바뀐다면 민주적 안정을 기하기 어렵다. 다만 독일이 겪은 실패와 성공의 체험은 눈여겨 볼 만하다. 독일은 바이마르시대 14년간 열네번 정권이 바뀌었고 결국 히틀러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전후 건설적 불신임제, 군소정당 저지 조항 및 반체제정당 불허제도 등 안전장치의 효과로 48년동안 6명의 총리가 태어났을 뿐이고 초대 아데나워총리는 14년, 지금의 콜총리는 15년간 집권으로 민주적 안정과 통일을 이룩했다. 우리의 경우 현행 헌법을 책임총리제로 운영하든, 아니면 독일식 내각제로 가든 성패의 열쇠는 사람이요, 운영의 묘다. 아무리 좋은 차도 운전기사가 좋고 또한 길이 좋아야 안전하게 달릴 수 있지 않은가. 당리당략을 떠난 이성적 국민적 토론이 전개되어 선거에 반영되었으면 한다. 박권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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