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인천지역 시민운동 대명사 ‘목요회’ 창립 20돌

  • 입력 2009년 6월 30일 06시 35분


《‘1991년 한국화약 소래포구 공유수면 매립에 따른 주민 피해 법률 구조, 1992년 계양산 살리기 범시민운동, 1993년 영종도 신공항 건설 환경감시 운동, 1994년 인천대 시립화, 1995년 굴업도 핵 폐기장 건설 반대….’ 1990년대 인천지역에서 굵직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목요회’가 등장했다. 1989년 결성된 이 단체에는 교수 변호사 성직자 약사 의사 문화예술인 등 각계의 양심적인 인사가 대거 참여하면서 인천지역 시민운동의 산파 역할을 해온 것.》

합리적 대안 제시 “인천을 바꿨다”

이 단체가 29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인하대 하이테크관 15층 라운지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인하대 최원식 교수가 ‘중형국가의 길’이란 주제로 평화적인 남북관계와 인천시의 발전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 풀뿌리 시민운동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운동이 거세지면서 1989년 ‘공안정국’이 형성됐다. 당시 인천지역에서 온건한 민주화세력으로 일컬어지던 성직자 교수 변호사 의료인 등 10여 명이 매월 마지막 목요일 정례모임을 갖게 되면서 ‘목요회’라는 이름이 생겼다. 정회원이 70여 명으로 늘어나자 월례회 외에 전문가 초청 토론회도 수시로 열렸다.

목요회는 1991년 남구 주안동 한 상가건물 3층에 100m² 규모의 작은 사무실을 마련해 법률, 세무, 건축 분야를 무료로 상담해주는 ‘시민 봉사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지역 현안을 정리한 계간지 ‘목요마당’을 창간했으나 경비를 감당하지 못해 5호까지만 발행했다.

시민 대상의 강연회, 토론회, 세미나는 꾸준히 이어갔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1년엔 ‘독일의 지방자치제를 모형으로 한 지방자치제 이론과 실제’ ‘인천, 참여와 자치시대를 위하여’ 등을 주제로 두 차례 시민 강연회를 마련했다. 이후 1994년 5월 ‘인천지역 환경실태와 개선방향’, 1995년 ‘영흥도 유연탄 화력발전소 문제’, 1999년 ‘한국 문화와 시민운동 역할’ 등의 공개 강연회가 있었다.

○ 행동하는 양심

목요회는 정부 및 인천시 당국의 잘못된 행정이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며 인천지역 시민운동을 주도했다. 학내 분규에 시달리던 선인학원의 초중고대학 등을 시립화, 공립화하는 운동을 1992∼94년 3년간 벌여 성공으로 이끌었다. 비슷한 시기에 모 기업체가 계양산에 대규모 위락공원을 조성하려 하자 시민운동에 나서 무산시키기도 했다. 1995년 정부가 경관이 빼어난 옹진군 굴업도에 핵 폐기장을 건설하려 하자 반대운동을 벌여 백지화시켰다.

이 같은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사들은 목요회 초대 의장인 김병상 신부와 ‘창작과 비평사’ 편집주간을 지냈던 인하대 최원식 교수, ‘인천의제21 실천협의회’ 상임회장을 맡았던 이흥우 치과의사,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교수, 이진 목사, 호인수 신부, ‘민주개혁을 위한 인천시민연대’ 홍재웅 상임대표 등이다. 목요회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은 송영길 의원(16∼18대)과 문병호(17대) 이호웅 전 의원(16, 17대) 등 3명이다.

목요회 간사였던 정희윤 씨(52)는 “창립 초기엔 음식점에서 월례회를 열 때면 형사들의 감시가 심해 수녀회에서 진행한 적도 많았다”며 “지역의 큰 현안이 생기면 사안에 따라 여러 시민단체와 공동기구를 결성해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