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편리함도 ‘중독’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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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최근 한 기업인이 “기후변화에 대중이 관심을 갖게 하려면 기후변화의 피해와 심각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담배 중독과 기후변화 문제가 과연 다를까. 그때 깨달았다. 수년간의 에너지 절약, 대중교통 이용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동참을 획기적으로 끌어내는 데 실패한 원인을. 우리는 편리한 삶에 지독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물에 잠기고 있는 남태평양 섬나라 주민의 절박한 형편과 털이 빠진 채 얼음판 위를 헤매고 다니는 앙상한 북극곰, 몇십 년 만의 대기근에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기구한 사정도 편리한 삶에 중독된 사람들의 오랜 습관을 끊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2017 배출량 보고서(The Emissions Gap Report)’에 따르면 21세기 말이면 지구 평균 기온이 3도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북반구의 빙하가 대부분 사라지고, 지구의 심장인 아마존 열대우림이 바짝 말라 전소돼 사바나로 변할 수 있으며, 로키산맥의 만년설이 사라지고 생물종의 최대 50%가 멸종할 수 있다. 남극과 그린란드 빙하가 녹아 2100년경 해수면이 1m가량 상승해 해안가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수십억 명의 인구가 살 곳을 잃게 된다.

무언가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알겠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피부에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좀 더 일상적인 예를 살펴보자. 2050년이면 유럽의 포도 재배 면적이 무려 68%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세계 와인 생산량은 5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밸런타인데이에 주고받는 달콤한 초콜릿은 앞으로 젤리나 사탕으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지난 40년간 카카오 재배지 면적이 40% 줄었고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인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의 기온이 40년 뒤면 2도 가까이 상승해 카카오 재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즐기는 식품들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여전히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만큼 설득력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커피도 초콜릿도 당장에는 얼마든지 풍족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수몰 위기에 처한 몰디브는 전 세계에 자국의 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2009년 잠수복을 착용하고 수중에서 각료회의를 개최했다. 사정은 딱하지만 당장 내 집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편리함을 포기하고 오랜 습관을 바꾸기에 우리 일상이 너무 바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어쩌면 편리한 삶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탄소발자국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절약과 부지런함의 미덕은 분명히 존재한다. 한 명의 변화는 미약해도 그것이 모이면 결과는 엄청나다. 이런 노력은 내 집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베풀어져야 진짜다.

금연의 절대조건이 본인의 의지인 건 누구나 다 안다. 어렵게 끊었다가 다시 피우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소리다.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습관도 중독성이 심해 자가용을 포기하고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절대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를 다질 때다.

한빛나라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실장
#기후변화#유엔환경계획#unep#배출량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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