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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50년전 음악-패션의 신세계… “시위 대학생 많이 숨겨줬죠”

입력 2018-02-20 03:00업데이트 2018-02-2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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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서울]<1> 김장환씨의 51년 터전 ‘명동’
1968년 충남 부여에서 상경해 50년간 중구 명동에서 식당과 임대업을 해 온 김장환 씨가 명동 거리에 섰다. “명동 부흥기가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는 김 씨의 말처럼 명동의 영욕을 함께한 50년이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빈대떡집은 크지 않았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작은 가게였다. 충남 부여에서 갓 상경한 김장환 씨(89)의 서울 나날은 그곳에서 시작됐다. 1968년, 서른여덟 살이었다. 메뉴는 빈대떡과 막걸리. 단골손님이 늘어갔다. 주변 소개로 동향의 아내를 만났다. 부여에는 도로 내려가지 않았다. 젊은 음악인이 모이는 음악감상실, 탤런트 입문소 같은 의상실과 미용실, 그 사이사이 허름한 대폿집…. 명동만의 생동감이 좋았다. 김 씨의 ‘고향’이 됐다.

“벌써 51년이 흘렀네…. 상경해 여러 음식점을 했지만 명동은 떠날 수 없었어. 내겐 신세계였거든.”

○ 50년 전 그곳, ‘다방 천지’

그에게 도시의 첫인상은 음식점보다 많은 다방이었다. 1968년 명동에는 모나리자 은하수 돌체다방 일번지다방 같은 다방 전성시대였다. 이후 음악감상실, 맥주 바(Bar), 양장점이 속속 문을 열었다. 6·25전쟁의 참화를 조금씩 벗어나면서 꾸미고 즐기는 문화를 파는 상점이 인기였다.

“시골 촌놈도 명동 ‘신한다방’하면 다 알 정도였지. 다방 이름만 대면 다들 신기하게 찾아왔으니까.” 특히 명동2가 53번지 ‘심지다방’이 유명했다. 문을 열면 자욱한 담배연기 속으로 음악이 먼저 반겼다. 약속이나 한 듯 테이블마다 연인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탤런트 최불암 씨의 어머니 이명숙 여사가 생전 운영한 막걸리집 ‘은성’은 그의 단골집이었다. “동방살롱 맞은편 건물(현 명동1가 대형 신발가게 자리)에 있었는데 최 씨와 동료 배우가 많았어. 탤런트 보는 재미에 자주 갔지. 박인환 씨 같은 시인도 자주 왔어.”

서울에 연고가 없던 김 씨는 한동안 가게 뒷방에서 살았다. 신혼집은 성북구 동선동에 마련했다. 성실한 부부를 좋게 봤던 한 손님이 “일식집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상경한 지 6년 만에 빈대떡집을 접고 명동에 일식집을 열었다.

고위공직자들이 많이 찾던 1970년대 초반이었다. ‘정치깡패’들이 명동을 누볐다. “신상사…. 지금도 기억나. 깡패들이 명동을 장악했지. 수시로 상인들에게서 돈을 가져가 사채업을 했으니까. 명동에서 식당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어.” 1975년 명동 사보이호텔 습격사건 이후에는 깡패들이 주먹 대신 칼, 도끼를 품고 다녔다.

1970년대 중반 ‘유신 철폐’를 외치는 학생 시위가 이어졌다. 이들 학생 일부는 경찰 눈을 피해 명동 뒷골목으로 숨어들었다. 몇몇 학생을 그의 가게에 숨겨줬다. 이 소문을 들은 김수환 추기경이 가게로 그를 몸소 찾아왔다. “고맙다고 하셨어. 앞으로도 도와달라고 부탁하시고. 그 후로 내가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힘을 모으자고 설득했지.”

○ “젊은 예술인들 다시 모였으면…”

1970, 1980년대 명동의 밤을 통기타와 맥주가 책임졌다면, 낮은 패션이 지배했다. 지금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PX(미군 매점)에서 흘러나온 해외 패션서적은 한국 디자이너의 교과서였다.

“앙드레 김, 조세핀 조, 김복환이 명동에 의상실을 냈어. 유명 배우나 고위공직자 부인들이 이곳에서 옷을 맞췄지.” 고급 구두를 파는 ‘살롱 화점’도 생겼다. 엘칸토가 대표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나이키, 리바이스 같은 스포츠와 청바지 유명 브랜드가 입점했다.

김 씨는 명동예술극장(옛 국립극장)을 사랑했다. 최불암, 이순재 등 당대 배우들이 여기서 무대에 올랐다. 배우를 꿈꾸는 청년들이 모였다. 그는 명동예술극장 건물을 지킨 주역이기도 하다. 1995년 이곳을 허물고 10층짜리 건물을 짓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가 나서서 이에 반대하는 1만 명 서명을 받아냈다. 상인들도 힘을 보탰다. 2003년 정부는 명동예술극장 건물을 인수해 2009년 재개관했다.

김 씨는 “아흔을 바라보는 늙은이의 소박한 바람은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다시 명동을 찾아 예술문화의 부흥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뒤로 중국어 안내판이 즐비한 명동거리가 흐릿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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