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 열린포럼 ‘할 말 있습니다’]<8>경쟁은 치열, 진로는 한정 ‘막막한 음대생’ 해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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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문턱 낮추면 재능 나눌 길도 열릴텐데…”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40 열린포럼’에서 멘토 홍승찬 교수(오른쪽)와 참석자들이 숙명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김은영 씨(왼쪽에서 두 번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홍 교수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40 열린포럼’에서 멘토 홍승찬 교수(오른쪽)와 참석자들이 숙명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김은영 씨(왼쪽에서 두 번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홍 교수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높은 취업 장벽과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마냥 당당할 젊은 세대는 없다. 하지만 음대생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더 크다. 어린 시절부터 악기나 성악 등을 배우기 시작해 청소년기엔 연습과 연주에만 몰두하고, 극심한 경쟁을 거쳐 결국 음대에 진학하지만 전문 음악가로 가는 길은 바늘구멍처럼 작기 때문이다. 솔리스트로 활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며, 웬만한 국내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려고 해도 70 대 1, 80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여덟 번째 ‘2040 열린포럼’은 ‘경쟁은 치열하고 진로는 한정된 음대생들, 해법은’을 주제로 정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이번 포럼에서는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 KBS교향악단 운영위원 등을 지낸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0·예술경영학)를 멘토로 음악 전공자 16명, 김용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사장(60),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 관계자 등이 모여 세 시간이 넘게 열띤 토론을 펼쳤다. 》
○ “음대만 들어가면 끝날 줄 알았는데…”

“죽어라 연습해서 대학만 들어가면 다 황금빛일 줄 알았다. 이렇게 기회의 문이 좁을 줄 몰랐다. 인문계 친구들은 선택 범위가 넓은데 음대 출신은 솔리스트 아니면 오케스트라다. 그렇지 않으면 1, 2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하던 레슨을 졸업한 뒤에도 계속하는 것뿐이다.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다.”

이화여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송지원 씨(22)는 올해 4학년이다. 그는 “자기만족을 위한 유학인가, 국내 대학원 진학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지만 대학원 과정을 마친다고 해서 기회가 더 많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고 덧붙였다.

“악기를 전공했다고 하면 ‘시집 잘 가겠다’ ‘돈 잘 벌겠다’고 한다. 이런 편견이 많기 때문에 음악 전공자들이 실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음대를 졸업한 상당수가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만 했기 때문에 세상 물정에도 어둡고 스스로의 기대치보다 훨씬 낮은 삶을 산다.”

첼로 전공으로 국민대를 졸업한 임주현 씨(27)는 “전공과 상관없는 길을 찾아간 몇몇 음대 친구가 도리어 현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음악 전공자들이 현실의 답답함을 토로하자 김용연 부사장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김 부사장은 “딸이 금융 전공으로 해외 유학을 하고 잘나가는 회사를 6년간 다니다가 다른 일을 하겠다고 접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승찬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분명한 생각 없이 유학을 갈까 대학원을 갈까 고민하는 것은 도피다. 다른 이들과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대신 못 살아준다”고 단언했다.

○ 음악 너머의 세계

음악 전공자들은 대학 시절에 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음악이 전부인 삶’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의 김정윤 총무(41)는 예고를 거쳐 연세대에서 트럼펫을 전공했다. 악기만이 길은 아니라고 여기게 된 뒤 미국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 시절엔 영어나 교양수업은 F학점을 받아도 되고 전공 악기만 잘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4학년이 되니 사회로 나갈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바이올린 전공으로 숙명여대를 졸업한 박현경 씨(24)는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 짜인 시간표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들어와서 과연 이 길이 내 길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전공과목이 많다보니 교양 수업을 들을 기회가 드물었다. 1, 2학년 때는 경영이나 인문학 등 음악 외의 다른 과목을 되도록 많이 들을 수 있도록 장려했으면 한다. 몇 년 뒤 자신의 길을 본격적으로 찾을 때 의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지나 씨(26·바이올린·국민대 졸업)는 “실기 위주의 수업이 대부분이어서 레슨을 할 때도 주입식으로 가르치게 된다. 음악 전공자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교육법이나 교수법 수업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근본 해법은 대중의 참여

음악 애호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넓어지면 음대생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줄어들 것이다. 기존의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곽다경 씨(23·바이올린·서울대)는 “록에 전혀 문외한인 친구도 록 페스티벌에 데려가면 신나게 놀고 즐긴다. 하지만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는 전공자도 연주회에서 간혹 졸곤 한다. 비전공자인 친구에겐 클래식 음악회에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일반 관객에게 외면받는 클래식 연주회를 좀 더 재미있게 꾸며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하람 씨(21·비올라·숙명여대)는 “뮤지컬 티켓은 8만∼9만 원 해도 관객이 몰린다. 그러나 학교에서 하는 클래식 연주회는 2만 원도 비싸다고 한다. 요즘 토크 콘서트가 유행인데 이런 식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많이 늘렸으면 좋겠다. 다양한 악기에 대한 관심을 북돋울 수 있는 기회다”라고 강조했다.

더 근본적인 해법으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들이 늘어나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오소연 씨(22·바이올린·이화여대)는 “전공이 아닌 취미로 음악을 즐기는 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 더 재미와 보람을 많이 느꼈다.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여진 씨(22·비올라·이화여대)는 “현악기는 독학으로 배우는 데 한계가 있다. 아마추어 음악가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은 있지만, 정당한 대가 없이 봉사활동처럼 그 일을 하기는 어렵다. 음악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예술교육의 확대는 시대적인 요구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울수록 문화예술에 관심이 커진다. 공적인 차원에서 배우는 사람이 크게 부담되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도 배고프지 않도록 제도적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빚 지우는 사회’ 신용 없는 대학생에게도 신용카드 내줘

:: 포럼 참석자 명단(가나다순) ::

▽멘토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예술경영학(50)

▽음악 전공자

곽다경 서울대 바이올린(23)

김나래 상명대 바이올린(24)

김은영 숙명여대 성악(19)

김하나 상명대 바이올린(27)

문여진 이화여대 비올라(22)

박현경 숙명여대 졸 바이올린(24)

송지원 이화여대 바이올린(22)

신지나 국민대 졸 바이올린(26)

신혜리 미국 커티스음악원 비올라(23)

오소연 이화여대 바이올린(22)

이혜리 세종대 성악(20)

임영희 이화여대 첼로(22)

임주현 국민대 졸 첼로(27)

임하람 숙명여대 비올라(21)

조수희 숙명여대 대학원 문화예술(24)

최수지 세종대 성악(20)

▽관련 단체

김용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사장(60)

김정윤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 총무(41)

최성신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 홍보·기획(34)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2040 열린포럼#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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