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대로 둘 것인가] 해외 7개국 현지취재

  • 입력 2006년 3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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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이탈리아는 지금 선거 열기로 전역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거리엔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 ‘동성애를 합법화하겠다’는 등 구호가 난무하고 TV 선거토론회가 하루에 몇 차례씩 열린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연금’이라는 단어를 듣기는 어렵다. 토론회 사회자가 연금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후보자들이 입을 맞춘 듯 일제히 화제를 바꿔 버리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연금개혁이 가장 절박한 국정 현안인 점을 감안하면 의아한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개혁은 잘못 건드리면 표가 우수수 떨어지는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카시노대의 세르지오 니스티코 교수는 “선거가 끝나면 누가 집권해도 반드시 대대적인 연금개혁을 할 것”이라면서 “목까지 차야 개혁하는 이탈리아를 한국은 본받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탈리아는 국가 재정의 15% 정도를 연금에 쏟아 붓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해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린다.

세계는 지금 처절할 정도로 연금개혁에 매달리고 있다.

본보 특별취재팀은 이달 프랑스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과 일본 칠레의 연금개혁 현장을 방문했다. 이들 나라는 한결같이 예상하지 못한 초고속 고령화에 대처하기 위해 연금개혁에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부는 2017년까지 보험료를 대폭 올린다는 내용의 신(新)연금법안을 2004년 6월 통과시켰다. 그 대가로 그해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래도 일본은 연금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특혜 시비를 불렀던 국회의원부조연금(의원연금) 폐지 법안을 3일 참의원에서 통과시켰다. 내년엔 공제연금(공무원연금)을 일반 후생연금과 통합하는 법안을 제출한다는 일정도 잡아 두고 있다.

독일에서 연금개혁은 ‘정권의 무덤’이었으나 역대 정권은 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 모두 전임자의 연금개혁안을 비판하면서 표를 모았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당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연금 급여를 깎는 내용의 슈뢰더 전 총리 개혁안을 전격 수용했다. 국가재정의 파탄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나라 밖에서는 이라크 문제, 나라 안에서는 연금개혁이 가장 뜨거운 이슈.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 최대 과제로 사회보장개혁을 내세웠다. 민주당이 이를 반대하면서 연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사회보장기금은 2041년에 고갈된다는 추계가 나와 있을 정도로 절박한 실정이다. 우연히도 기금 고갈 시기가 한국과 비슷하다.

2004년 독일의 연금개혁에 직접 참여했던 만하임대의 악셀 뵈르슈 슈판 교수는 “제도 정착이 안 된 한국은 초고속 고령화까지 겹쳐 유럽이 100년에 걸쳐 씨름한 문제가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회정책국 모니카 크바이서 수석분석관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와 맞물려 유럽보다 4배 정도 상황이 나쁘다”면서 “개혁이 늦어지면 엄청난 혼란을 치를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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