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3년 링컨 노예해방 선언

  • 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이날 즉시, 그리고 이후로 영원히, 미국의 반란지역에 노예로 속박돼 있는 모든 사람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월 1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5쪽짜리 문서에 천천히, 그리고 확고하게 서명을 마쳤다. 미국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은 ‘노예해방선언문’이었다.

사실 이 문서는 대담한 철학이나 주장을 담은 선언문이라기보다 일종의 행정명령서였다. 100일 전인 1862년 9월 22일 그가 ‘무장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예고한 노예해방 조치를 적용할 구체적 지역과 실행 방안 등을 적시한 것이었다.

노예해방이 적용되는 지역은 링컨 대통령의 권한이 미치지 않는 반란세력 남부군의 점령지역, 즉 북부군이 장차 되찾아야 할 ‘미수복 지역’에 한정돼 있었다. 정작 북부군 관할 내에 노예제가 이미 허용된 곳에서는 노예해방 조치가 적용되지도 않았다.

이런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선언은 ‘정치인 링컨’의 현실주의적 선택이었다.

그에게는 흑인의 발에서 노예의 족쇄를 풀어주는 것 못지않게 미합중국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일찍이 “만약 단 한 명의 노예도 자유롭지 않게 하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천명해 왔다.

링컨으로선 남북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종결시켜야 했다. 하지만 전쟁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자칫 유럽 국가들까지 개입할 우려가 있었다. 이에 링컨은 전쟁의 목적을 단순히 ‘연방 유지’가 아니라 더욱 보편적인 ‘노예해방’에 맞춰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노예해방선언 이후 남부의 핵심 생산수단이었던 흑인 노예가 대거 자유를 찾아 북부로 도망갔고 영국도 ‘노예제 옹호국가’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해 남부군 지원을 포기함으로써 전세는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865년 1월 링컨은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노예제를 폐지했다. 연방을 구하고 노예를 해방시킨 것이다. 노예해방을 외친 인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링컨이 이룬 위대한 승리였다.

며칠 뒤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취임한다. 노예해방선언이 나온 지 146년 만이다.

검은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어느 백인보다도 백인 같다”는 소리를 들어 온 버락 오바마, 그가 담대한 희망 속에 감추고 있는 냉철한 현실주의가 앞으로 미국을,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자못 궁금하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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