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0년 버스회수권 갈등 대책

  • 입력 2008년 12월 9일 03시 00분


교통카드가 도입되면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생들에게 버스회수권은 ‘필수품’이었다.

버스조합에선 할인 혜택을 받는 학생을 제대로 가려내기 위해 버스회수권을 사용토록 했다. 세무당국은 투명한 세원관리를 위해 버스회사의 회수권 사용을 장려했다. 하지만 버스회사로선 회수권을 수집해 사후 정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버스회수권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중년의 세대라면 누구나 한두 개쯤은 갖고 있다. 버스회수권이 없어 현금을 낼 경우 일반 요금을 내야했던 기억도 있다. 현금을 낼 때보다 회수권이나 토큰, 교통카드를 사용할 때 할인 혜택을 받는 ‘역설적인’ 곳이 바로 시내버스다. 할인 혜택을 받는 대학생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해 버스회수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나이 어린 직장인이 갈등을 빚은 것도 버스회수권이다.

1970년 서울 학생들은 버스회수권(10원)을 내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회수권이 없으면 일반 요금인 15원을 내야 했다. 당시 버스조합에서는 ‘정복(正服) 학생 10원, 정복을 입지 않은 학생은 일반 요금인 15원’이라고 안내문을 버스마다 걸어놨지만 운전사 마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 교복을 입은 학생도 회수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일반 요금을 내야 돼 버스운전사나 차장과 다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회수권 사용을 둘러싼 학생과 버스운전사의 갈등은 고발사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1970년 12월 7일 3명의 고교생이 한 버스운전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 중앙고에 다니는 김모(당시 17세) 군 등 3명의 고교생들은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정복 학생 요금인 30원을 냈다. 하지만 차장은 회수권이 없으니 모두 45원을 내라고 했다. 학생들은 “학생 정복 차림이니까 10원씩 모두 30원을 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들은 학생 복장에다 학생 모자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운전사는 “이런 놈들은 혼내줘야 한다”면서 목적지인 대한극장을 두 정거장이나 지난 곳에 내려줬다. 그리고 이들에게 1인당 15원씩 45원을 받아냈다.

회수권을 내고도 봉변당한 학생도 있었다. 당시 숙명여대 3학년 학생이었던 한모(21) 씨 등 6명은 같은 날 숙대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회수권을 내고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차장은 “현금을 내라”면서 하차시켜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세 정거장이나 지난 청계천2가에서 다른 승객의 도움을 받아 겨우 하차할 수 있었다. 이들은 “학교에서 산 회수권인데 왜 안 받느냐”고 따지자 차장은 “여대생이면 다냐. 안 받는다는데 왜 말이 많으냐”고 거부했다.

서울시경은 같은 해 12월 9일 정복 학생에 대해 회수권을 강요하거나 부당요금을 징수할 경우엔 운전사와 차장을 처벌하고 사업주에 대해서도 행정 책임을 묻기로 했다. 또 요금 징수를 둘러싸고 폭언을 하거나 목적지 정류장에서 내려주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어렵던 시절엔 학생들의 버스요금조차 그렇게 큰 부담이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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