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상류층 부인 밀수보석 거래 적발

  • 입력 2008년 9월 16일 03시 00분


‘미스 홍’ ‘새영 엄마’ ‘빨간 잠바’ ‘신당동 아주머니’ ‘키티 엄마’ ‘똘똘이 엄마’ ‘돼지 엄마’ ‘극장 아줌마’ ‘마닐라 아줌마’….

평범한 부녀자들이 아니다. 1974년 9월 16일 검찰 수사로 세상에 드러난 상류층 부인들의 대규모 밀수 보석 거래와 연관된 점 조직의 일원을 이렇게 불렀다.

1974년은 유달리 서민들에게 힘든 한 해였다. 한국을 엄습한 석유파동으로 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물가도 급등해 서민들의 가계부는 주름살이 깊게 파였다. 상인들은 추석 대목이 실종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주부단체에선 “차례상에 보리로 만든 송편을 올리자”는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상류층 부인들이 포승줄에 묶여 줄줄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지검은 이해 9월 16일 밀수 보석을 사들인 부유 고위층 부인 8명을 포함해 28명을 관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불법 거래된 밀수 보석 1060여 점(시가 5750만 원)이 검찰에 압수됐다.

국영기업체 사장과 전 국회의원, 대학의 학장, 통신사 사장 및 육군 대령 부인들이 포함돼 있었다. 현직 장관 부인이 연루됐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검찰은 이들이 사들인 밀수 보석 액수가 1억 원어치가 넘는다고 했다. 일부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비취반지, 팔찌 등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돈놀이’를 하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말보다 여인의 마음을 더 잘 움직인다’고 하는 보석. 이것 때문에 이들은 졸지에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돼버렸다.

상류층 부인들이 보석에 눈독을 들인 것은 당시 경제 상황과도 맞물려 있었다. 오일 쇼크 후폭풍의 인플레이션에서 다른 사람의 눈에 노출되기 쉬운 토지매매 같은 부동산 투자보다는 간직하기 쉽고 잘 드러나지 않는 보석 투자가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호화 주택이나 대규모 땅을 갖고 있을 경우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였다.

여자들이 보석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하지만 1974년이라는 시대적인 상황은 보석 소유에 대한 욕망을 허용하지 않았다. TV에는 상류층 부인들이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모습이 방송됐고 신문에는 명함판 사진이 이름과 함께 크게 실렸다.

이틀 뒤인 9월 18일 박 대통령은 19개 부처 가운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비롯한 9개 부처 장관을 경질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보석 사건에 연루된 장관은 개각에 앞서 자진해서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휴가 때 크루즈를 타고 면세 지역인 카리브 해의 섬을 찾아다니며 보석 여행을 하는 미국 상류층 부인들. 아무도 이들을 나무라지 않지만 경제개발에 매진하는 1974년 한국에서 ‘럭셔리’를 꿈꾼 상류층 부인은 호된 벌과 함께 패가망신의 대상이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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