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박수경/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엄마들

  • 입력 2003년 11월 5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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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
얼마 전 초등학생인 아이의 학교에서 미술대회가 있었다. 주어진 화제(畵題)는 주변 경관이나 가족의 이야기였다.

큰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작은아이와 함께 대회 장소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놀랄 만한 일을 목격했다. 아이 옆에 앉아 그림을 수정해 주는 보호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는 아예 아이 대신 그림을 그려주거나 다른 그림을 베끼기도 했다. 학교측은 아이들이 그림 그릴 때 부모들이 일절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부모의 개입은 단지 미술대회만의 풍경은 아니다. 음악콩쿠르 체육대회 무용대회 등 아이들의 경쟁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잘 되도록 부모가 뒷바라지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를 대신해 신발을 신겨주고, 밥을 먹여주고, 그림을 그려주고, 입시 공부를 위해 함께 밤을 새우는 것이 진정한 뒷바라지일까?

조선시대 명필 한석봉의 어머니는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을 공부가 부족하다고 꾸짖으며 내쳤다. 석봉의 어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떡 행상을 했다고 한다. 부유하지도 않았고, 교육의 혜택을 받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자녀 교육에 관한 그의 철학은 분명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을 뒷바라지한다는 명분 아닌 명분 아래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은 잊은 지 오래고, 미래에 대한 꿈 또한 아득하기만 하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찾는 것이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길이다.

이는 자녀세대를 통해서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자녀를 위해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에서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아이들의 일을 대신해 주는 데 소모하는 것은 부모와 자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식에게 물질적 풍요를 베푸는 모습보다 소박한 꿈이나마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일 것이다.

박수경 부모교육 강사·경기 수원시 팔달구 영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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