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선관위 공직생활 마감하는 임좌순 前사무총장

입력 2004-10-05 19:12수정 2009-10-09 14:06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박영대기자
‘미스터 선관위’로 불리던 임좌순(任左淳·55)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2일 선관위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이임식 자리에서 끝내 눈물을 쏟았다. 37년이라는, 성년 이후 인생 전부를 바친 일터를 떠나는 것이기에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그 하루 뒤인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자연인 임좌순’을 만났다.

“백수가 남는 게 시간인데…. 불러줘서 고맙소.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터뷰까지 하려고 해. 이렇게 만났으니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직함’을 놓은 사람의 겸연쩍음이었을까. 숱하게 기자들과 만나 선거와 선거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하던 때와는 달리 기자를 만나는 것 자체를 머쓱해했다.

그에게 이끌려 근처의 한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연인’이 된 소감부터 물었다. 37년 세월을 오직 한 조직에 쏟아 부은 사람에게 그런 소감을 묻는 것 자체가 잔인한 일은 아니었을까. 예상 밖으로 “후련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선관위에서) 할 일은 거의 다 했어. 아름다운 퇴장에 대한 전통도 필요하고….” 그리곤 창밖의 석양을 잠시 쳐다본다.

그는 한국 민주화의 제도적 정착 과정을 몸으로 체험한 산증인이다. 제3공화국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선거의 파수꾼’으로 대선 10번, 총선 10번, 지방선거 5번을 치러냈다.

임 전 총장이 때로는 정치권과 대결하며, 때로는 정치권을 설득해 민주주의와 선거발전에 헌신한 대목은 그에게 붙은 수많은 별칭에서도 잘 나타난다. ‘임 계도(啓導)’ ‘임 공명(公明)’ ‘걸어다니는 선거법’ ‘미스터 선관위’ 등.

‘걸어 다니는 선거법’은 그의 해박한 선거법 지식을 표현한 말로 “툭 건드리면 각종 선거법 조항이 곧바로 튀어 나온다”고 할 정도다. 80년대 후반 그가 앞장서서 내무부(행정자치부의 전신) 소관이던 선거업무를 하나둘씩 선관위로 가져갔기 때문에 내무부 사람들에게 그는 ‘공적 1호’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말 죽기 살기로 했어. 그래서 몸도 성한 데가 없고. 한때는 이명(耳鳴)도 생기고 모든 이가 다 흔들릴 정도로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직장을 그만두든지, 병 낫길 포기하든지 택일하라더군.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수야 없는 것이니….”

그는 9급 공무원에서 출발해 장관급인 선관위 사무총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 선관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 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고교 졸업 이후 가정 형편상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자 공무원시험을 보았다. 선관위에 들어온 뒤 짬짬이 공부해 건국대 법학과, 성균관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1994년 선거국장 시절 정치권과의 줄다리기 끝에 깨끗한 선거의 기틀이 된 통합선거법을 만든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강력한 제재’를 체질적으로 원치 않는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일은 늘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선관위의 선거법 개정의견을 대개 관철해내곤 했다. 그의 ‘뚝심’과 ‘탁월한 조정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순간도 많았다. “1996년 총선 때 타락선거가 판을 쳤지만 사후 선거비용 실사로 분위기를 다 잡았는데 1998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가 다시 혼탁선거로 돌아가는 것을 보자니 정말 분통 터집디다.”

그러면 ‘미스터 선관위’가 보는 오늘날 한국 선거의 건전성은 어떤 수준일까. “관권에서 금권으로 이어져 온 부패상은 올해 4·15총선을 계기로 완전히 정리됐습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만 과거로 회귀하지 않으면. 이제 제도는 완결됐으니 앞으로 문제는 유권자들이 누구를 얼마나 잘 뽑느냐는 것이겠지요.”

그에 대해선 늘 정치권 영입설이 심심치 않았고 내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설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국회의원이 아무나 하는 거냐”고 에둘러 말했다. 그리곤 내년부터 호서대 출강 등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가족과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선관위에선 일 잘하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가족에게는 빵점이었지. 집사람이 나가서 놀아본 적이 없어 노는 방법을 몰라 여유가 생겨도 갈 데가 없다고 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 임좌순 전 사무총장은

△1949년 충남 아산 출생 △1973년 건국대 법학과 졸업 △198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과장 △1989년 선거과장

△1993년 선거국장 △1995년 선거관리실장 △1998년 사무차장 △2000년 사무총장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