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서울 하늘 숨막힌다]생태계도 변했다

  • 입력 2001년 3월 26일 18시 48분


▼'서울의 허파' 남산도 죽어간다▼

대기의 환경기준은 오염현황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해 설정된다. 따라서 대기의 오염수준이 기준치보다 낮을 경우 사람은 ‘생물학적 약자’가 아니라면 건강상의 이상 징후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먹이사슬 구조상 가장 윗자리에 위치한 인간과 달리 동·식물계에서는 서울의 현재 대기오염 수준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생태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서울시내와 근교의 동식물 가운데 개체수가 줄거나 멸종 위기에 몰린 생물들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 반면 오염된 공기가 호재로 작용해 생장이 활발해지거나 개체수가 느는 생물들도 있다. 한마디로 대기오염이 생태계의 균형을 깨고 있는 것이다.

▼멈춰선 식물의 '생태시계'▼

주말마다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등 서울 인근의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수십만명에 이르지만 산마다 낙엽이 수북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혹시 낙엽을 땔감으로 긁어가던 과거와 달리 정부의 ‘입산금지’조치 이후 낙엽이 고스란히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뭘까. 바로 낙엽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산성비로 인해 격감했기 때문이다. 낙엽을 부식시키는 분해자는 사이토파가(Cytophaga)와 바실러스(Bacillus) 등의 미생물이고,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토양은 PH7 가량의 중성 토양. 그러나 서울시내 토양의 산도는 PH4.09∼4.91의 강산성이다.

▼연재순서▼

- 1. 사람잡는 대기 오염
- 2. 생태계도 변했다
- 3. 오염운반체 황사
- 4. 공기는 돈이다
- 5. 숨쉴수 있는 공기를

서울의 오염된 대기가 산성비의 원인이 되어 토양의 산성화→미생물 감소→낙엽부식 지연→식물생장 부진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식물의 생태 변화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남산 등 서울 근교 산의 나무에는 이끼가 거의 살지 않는다. 토양의 산성화와 열섬현상에 의해 이끼가 자라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립대 이경재(李景宰)교수가 남산과 오대산의 신갈나무군집에서 이끼 피복율을 비교한 결과 오대산에는 20% 이상의 이끼가 자라는 교목(喬木)이 71.3%나 됐으나 남산에는 그런 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었다(표 참조). 남산의 신갈나무는 대부분 이끼가 5% 이하에 불과하거나 아예 없었다는 것.

개체 수가 줄거나 멸종위기에 몰린 식물도 많다. 이교수가 남산의 특정 소나무 군락에서 나무 개체수를 비교한 결과 최근 5년 사이에 개체수는 절반 수준(50.5%)으로 줄었으며 조사구역에서 아예 사라진 식물도 4종이나 됐다는 것.

이에 반해 산성토양에 강한 외래종 가중나무는 95년 남산 전체에서 529그루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626그루로 18.3% 늘었고, 귀화식물인 서양등골나물이 자라는 지역도 같은 기간에 15.4%에서 20.4%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교수는 “최근 서울의 대기가 악화되면서 교목을 중심으로 식물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계속될 경우 나무는 사라지고 풀만 무성한 ‘초원 생태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곤충과 조류의 생태변화도 심각하다. 곤충의 경우 식생이 단순해지면서 말벌과 매미 등 공해에 강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개체수가 급격히 주는 등 생태계가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비둘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조류도 서울 시내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곤충 가운데 가장 많이 줄어든 것은 나비류. 왕은점 표범나비와 넓은띠 녹색부전나비, 쌍꼬리 부전나비 등은 이미 서울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며 딱정벌레나 넓적사슴벌레도 크게 줄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79년만 해도 459개종에 달하던 곤충(진딧물, 하루살이류 등은 제외)이 98년엔 215종으로 53.2%나 줄었다.

이런 현상을 가장 먼저 감지한 곳은 초등학교. 90년대 초부터 여름방학 숙제에서 ‘곤충채집’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반해 매미와 말벌은 개체수가 갑자기 늘어나는 ‘대발생(Outbreaking)’현상을 보여 대조적. 고려대 곤충연구소 노태호(盧台鎬)박사는 “서울에서 매미가 급증한 것은 열섬현상으로 겨울철 기온이 상승, 땅속에서 얼어죽는 애벌레가 크게 준 데다 대기오염으로 천적마저 줄었기 때문”이라며 “말벌은 상대적으로 행동반경이 크다는 점이 개체 증가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먹이사슬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대부분의 곤충이 격감하다보니 곡식류를 먹이로 삼는 비둘기, 참새 등을 제외한 까치, 제비 등 거의 모든 새들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것은 당연한 일. 그밖에 중년층 이상의 시민들이 어릴 때 생활 주변에서 접하곤 하던 솔개, 매, 황조롱이 등의 맹금류는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이교수와 노교수는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에 먹이사슬의 하부단계인 동식물의 생태계 교란은 ‘인간 생태의 위기’를 예고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저농도 오염에서의 동식물 생태변화에 대한 연구가 사실은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하종대·민동용 기자>orionha@donga.com

▼남산 지킴이 이경재교수 "15년째 뱀한마리 안보여"▼

“‘서울의 허파’인 남산이 살아 있어야 시민들의 건강도 담보할 수 있습니다.”

24년째 남산의 식생(植生)을 연구하고 있는 서울시립대 이경재교수(51)는 ‘남산 생태계의 지킴이’다.

그만큼 남산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이도 드물다. 그가 남산 전체의 식생을 조사한 것만도 3번. 이를 위해 한 해에 100여일은 남산에서 살았다. 식생 표본조사를 위해 그가 설정한 고정조사구(가로 세로 각 10m)만도 24곳. 이 표본조사구를 통해 매년 남산의 식생변화를 관찰한다.

지난해 남산의 식생을 조사한 이교수의 마음은 착찹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숲의 퇴화현상을 예상하긴 했지만 조사결과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

교목(길이 10m 이상의 나무) 가운데 밑둥에서 싹이 나와 있는 게 전체의 68.8%. 오대산(7%)의 10배에 가깝다. 이 나무 밑둥의 싹은 나무가 스스로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할 때 종족보존 차원에서 나오는 것. 남산의 토양이 척박해졌다는 사실을 나무가 제일 먼저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때 나무에서 묻어나는 시커먼 매연가루도 그를 슬프게 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가끔 눈에 뜨이던 뱀도 15년째 감감소식이다. 현재 남산의 수종은 나무 122종, 풀 161종 등 283종으로 숲 면적비율로 보면 신갈나무림이 18.3%로 가장 많으며 아카시아림 16.0%, 소나무림 14.5%순이다.

이교수는 “남산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3∼5년마다 토양과 식생, 곤충과 조류 등에 대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며“그러나 근본적으로 산성비의 원인인 서울 공기의 질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남산이 되살아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