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암호같은 경찰조서 "경찰은 알까"

  • 입력 2001년 1월 7일 19시 11분


‘용의자가 만진 종이에서 잠재지문 현출’, ‘수협지소 앞 노상까지 약 6㎞ 상거한 거리를 운행’, ‘상세 내용은 추후 보고 위계임’.

특수부대원끼리 주고받는 암호가 아니다. 최근 한달간 경남도내 각 경찰서들이 사건 사고를 처리하면서 경남지방경찰청에 올린 보고서의 내용중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현출(顯出)’은 ‘찾아내’로, ‘상거(相距)한’은 ‘떨어진’ 정도로 쓰면 될 단어다. ‘위계(爲計)’는 ‘예정’이나 ‘계획’으로 써도 충분하다.

▼'용어 순화' 쇠기에 경읽기▼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표현과 거리가 있는 보고서나 경찰조서는 이뿐만 아니다.

‘부검한 바 외상성 소장파열에 의한 범복막염이란 소견에 따라…’ ‘현장 임장한 바 동소 창고인’ ‘사육주 상대 일주 경위 조사중’ 등 부지기수다.

임장(臨場), 일주(逸走) 등은 사전을 찾아 앞뒤 단어와 연결해서 해석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쓰이지 않는 용어들이다. ‘금일’ ‘익일’ ‘허가를 득한’ ‘교부받아 편취’ 등도 쉬운 우리말로 고쳐쓰기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들.

이처럼 경찰의 보고서나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일반 국민의 언어생활과 친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넘쳐나고 있다.

95년 7월 경찰청은 ‘경찰 용어 순화편람’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일선 경찰에 배포했다. 또 한글날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문제점이 지적돼 왔으나 ‘쇠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순화편람에서 경찰청은 확행(確行)→꼭 하기바람, 비번일(非番日)→쉬는 날, 경미(輕微)한→가벼운, 단서(端緖)→실마리, 언동(言動)→이야기로 예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용어를 고집하는 경찰관이 대다수다.

이는 업무처리의 효율을 떨어뜨림은 물론 혼선을 빚을 소지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뿐만 아니라 피의자 신문조서에도 고쳐야 할 용어들이 많다.

▼혼선 빚어 업무효율 저하▼

‘피의자 ○○○는 강제집행을 면탈할 목적으로… 채권이 있는 양 가장하여 이를 양도함으로써’ ‘그 정을 모르는 성명불상자로 하여금… 소유권 이전등기를 경료하게 함으로써 공정증서 원본에 불실의 사실을 기재하고, 이를 즉시 그곳에 비치’ 등이 그 예.

특히 진술조서의 경우는 정확한 의미전달이 무엇보다 중요해 하루빨리 쉬운 우리말을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피의자가 자신의 진술내용이 조서에 정확히 쓰여졌는지 모른 채 손도장을 찍는다면 큰 문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수십년전의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을 고집하는 것은 유식해 보인다는 잘못된 생각에다 상급 기관격인 검찰에서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검찰-법원도 개선노력 필요▼

법원이 오래전부터 한자 어투를 풀어 쉬운 우리식 표현으로 쓰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경남경찰청의 한 간부는 “과거에 학교를 다니고, 선배들이 가르쳐준 대로 문서를 작성해온 나이든 경찰관들은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며 “그러나 최근에 들어온 젊은 경찰관들은 쉬운 우리말로 서류를 작성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방송국 아나운서와 경찰대학 교수 등을 강사로 초청, 본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강연회’를 실시한 적도 있다”고 밝히고 “앞으로 일선의 모든 경찰관들에게 지속적으로 언어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원〓강정훈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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