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 에티켓]'迷路'번지수 어디가 어딘지…

  • 입력 2000년 7월 12일 18시 43분


‘한국은 번지 없는 나라?’

이달초 영국에 사는 친구를 서울에 초청한 미국인 세이 맥래런(26)은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공항에 마중나가는 대신 친구에게 집주소를 가르쳐준 뒤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더니 집을 찾지못한 택시운전사가 친구를 엉뚱한 동네에 내려주고 사라져버린 것.

맥래런 역시 서울에 산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낯선 곳을 찾아가려면 불안감이 앞선다. 길을 몰라서 택시를 타더라도 운전사 역시 못찾겠다며 거리를 헤맨 경험이 여러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주소만 갖고 택시를 타면 찾기 힘들다는 것을 한국에 살아본 외국인들이라면 다 알고 있어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20여년간 유통업체 컨설턴트 일을 보고 있는 아키야마 에이치(75) 는 서울의 택시를 탈 때마다 이해가 안되는 점이 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택시운전사들이 의무적으로 번지가 적힌 지도를 갖고 다니도록 돼있어요. 손님이 길을 모르더라도 운전사가 찾아줍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도조차 안갖고 다니는 택시운전사가 많습니다. ‘나는 위치를 모르니 당신이 알려달라’고 할 때는 기가 막힙니다.”

그렇다고 택시운전사의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번지만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만큼 서울의 주소체계는 복잡하다. 이 때문에 사실 지도를 가지고 있어도 가려고 하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키야마는 “일본에선 위치를 모르는 음식점이나 상점을 찾아갈 때도 미리 전화만 하면정확한 주소와 약도를 팩스로 보내준다”며 “한국에서는 이런 서비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중교통수단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지하철역의 주변안내지도는 번지도 없이 관공서나 빌딩 이름만 나와있거나 동서남북이 거꾸로 돼 있는 경우도 있어 외국인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익숙한 곳이 아니면 헤매기 십상이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88올림픽 당시 서울에 온 외국인들이 길찾기에 가장 큰 어려움을겪는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아직도 대형빌딩조차 번지가 표기돼 있지 않은 곳이 많다”며 “월드컵 전까지 건물에 번지만이라도 눈에 띄게 표시해 찾기 쉽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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