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운전예절]"핸들만 잡으면 딴사람"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58분


어느덧 방송 경력이 1년이 다 돼간다. 길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지만 또 한편으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예전같으면 별 생각없이 행동했으나 이젠 날 알아본다는 이유로 남들 눈에 띌 만한 행동들은 하지 못하게 됐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교통법규 지키기다. 차들이 안 지나가는 한적한 횡단보도에서 유난히 빨간불이 오랫동안 켜져 있을 때 뛰어 건너가고픈 욕구가 끓어 올라도 참아야 하는 것이다. 맥주 한 두 잔 마시고 나서 차를 가져갈까 놔두고 갈까 망설일 때, 예전같으면 차가 없어서 생기는 불편한 일들이 떠올라 단속을 피해 요리조리 차를 몰고 갔지만 이젠 단속에 걸려 일어날 끔찍한 일들이 떠올라 미련없이 차를 놓고 간다.

얼마 전 투명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할로우맨’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이 영화에서는 자기 신분이 노출되지 않고 익명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상황이 닥치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하게 변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단지 영화라는 가상 공간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활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도로 위 자동차 안이다. 차를 몰면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길에서는 누가 하는 것인지 모른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아예 자동차 유리를 새카맣게 선팅해 아예 누가 타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한다. 흔히 쓰는 말 중 하나가 “누구는 핸들만 잡으면 딴 사람이 돼버리더라구”하는 말이 있다. 평소 얌전하고 착하기만 하던 사람이 운전만 시작했다 하면 욕설을 하고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이고, 무작정 끼어 들기와 난폭 운전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정말 인간은 본래 사악한 것일까? 자동차 번호판에 이름을 써넣으면 우리의 도로가 편안해질까? 정말 쓸 데 없는 생각을 해본다.

표진인(정신과 의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