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외제약 보험적용 제한 논란

  • 입력 2002년 4월 17일 18시 53분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 의약품에서 국제적으로 약효를 인정받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을 다수 제외하고 있는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고가 외제 의약품에 대해 보험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보험급여를 제한하는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제약산업 보호라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보험재정 때문에 신약을 제한하는 것보다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높여서라도 필요한 약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보험 재정 안정보다는 환자의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외국 제약사의 신약 제한으로 통상 마찰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

▽실태〓만성 B형 간염 환자 윤모씨(29·서울 노원구 상계동·회사원)는 2000년 5월부터 간염의 유일한 치료제인 라미부딘을 복용 중이다. 처음 1년 동안은 보험적용을 받아 월 3만6000원의 약값을 냈지만 이후 10개월은 보험적용을 받지 못해 4배에 이르는 월 12만여원을 약값으로 내고 있다. 정부가 이 약에 대해 1년간만 보험을 인정해주기 때문.

또 당뇨병치료제인 ‘노보넘’은 기존 치료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어 외국에선 1차약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보험적용 기준엔 기존 약을 사용한 뒤 식후 혈당조절에 실패했을 때 사용하는 2차약제로 분류됐다.

관절염 치료제로 위장장애 부작용이 적은 ‘콕스2 억제제’도 기존 약을 사용한 뒤 부작용이 있을 때 사용하는 2차약에 속한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신약이 국내에서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야 사용되는 약으로 바뀐 것이다.

▽의료계 반발〓정부의 보험 제한에 대해 환자는 물론 의사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을 처방해도 고가약이라는 이유로 보험급여에서 삭감당하기 일쑤라는 것.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의사는 “환자에게 부작용이 적은 고가약을 처방하면 일단 건강심사평가위원회에서 무조건 보험급여를 삭감하고 본다”며 “보험삭감된 것을 환수받으려면 이의제기신청 등 절차가 까다롭고 보험급여가 안되는 비싼 약을 처방했다고 환자의 불만도 커서 고가약 처방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한미 무역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미국의회에 제출한 ‘연례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는 의약품에 대한 불투명한 보험급여 기준 때문에 외국 의약품의 한국시장 접근이 제한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심사평가위원 관계자는 “고가 신약이라고 무조건 삭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의사들도 보험재정을 고려해 대체약을 우선적으로 써봐야 하는데 실제로는 무조건 신약 처방만 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가약의 경우 약효나 부작용면에서 대체할 약이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

▽정부 입장〓보건복지부는 “모든 약에 대해 1차약제 2차약제 등으로 나누어 합리적으로 적용을 하고 있다”며 “재정문제 등으로 현실에 맞는 기준을 만들면서 생긴 일부 부작용을 제약업계나 의료계에서 의약품 접근 방해나 의사처방권 방해라는 논리를 펴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반발했다.

복지부는 또 보험급여는 복지부에서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약을 무제한으로 보험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보험재정도 문제지만 국내 제약업계가 초토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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