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재산 많아도 세금낼 돈 없다?

  • 입력 2001년 6월 5일 18시 39분


‘500억원대의 땅을 팔았고 매년 4차례씩 미국, 일본 여행을 다녔지만 세금 낼 돈은 한 푼도 없다.’

‘수억원 상당의 주식이 있지만 자동차세 200여만원은 낼 수 없다.’

서울시가 4월20일부터 100만원 이상의 시세(市稅) 상습 체납자 12만7000명에 대해 벌인 금융재산 1차 조회 결과 드러난 ‘천태만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체납액의 수십배가 넘는 금융재산을 주식, 예금, 펀드 형태로 소유하고 있었다.

정모씨(63)는 99년부터 지금까지 500억원대의 땅을 팔고 내야 할 양도세할 주민세 등 18건의 지방세 4억9813만여원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정씨는 모 금고에 2억원의 예금을 갖고 있는 데다 95년 1월부터 4월17일까지 17차례나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했다. 연평균 4차례씩 외유를 즐기면서도 납세의 의무는 ‘나 몰라라’한 것이다.

재산세 등 468만여원을 체납한 이모씨(66·여)는 금융재산을 분산 예치하는 ‘포트폴리오’ 원칙에 철저한 경우. 이씨가 확보하고 있는 금융재산은 △모 은행 양도성 예금증서 1억원 △모 은행 펀드 예치 3억여원 △은행 예금액 3614만여원으로 나타났다.

안모씨(50·여)는 체납액이 200여만원에 불과한데도 체납액의 360배나 되는 7억2000만원을 모 증권 기업어음으로 갖고 있다. 한 은행의 펀드에 가입해 평가액 10억6700만원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정모씨(88)도 5095만여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이모씨(49)는 50억원대의 부동산을 매각한 뒤 일부를 한국통신 등 ‘우량주’에 투자해 주식만 1억9515만여원어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5212만여원의 재산세 체납은 그대로였다.

한편 일부는 금융재산 조회가 시작되자 곧바로 금융재산을 현금으로 바꿔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98년과 99년에 걸쳐 주민세 등 40건에 1억1328만여원을 체납한 차모씨(44)의 경우 시가 강제징수에 들어가자 2일 주식과 예금 5800만여원을 빼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금융재산 조회 결과를 입수하는 즉시 곧바로 재산압류에 들어가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상습적인 체납 관행을 뿌리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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