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이혼녀들 양육비에 또한번 운다

  • 입력 2001년 5월 31일 19시 06분


“자식보다 돈이 소중합니까. 아이들은 학비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아버지란 사람은 돈 감추기에 급급하다니….”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는 가운데 이혼 여성들이 전남편에게서 소액의 양육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자녀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례〓박모씨(52·여)는 77년 모 국립연구소 연구원이던 오모씨(60)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끊임없는 불륜을 견디다 못해 99년 이혼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은 “두 사람은 이혼하고 오씨는 박씨에게 위자료 300만원과 재산분할금 6000만원, 매월 양육비 6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전업주부이던 박씨는 그후 봉투접기 등을 하며 홀로 가정을 꾸려나갔지만 경제사정은 어려워만 갔다. 아들(20)은 등록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했고 둘째딸(19)도 학업을 중단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편 오씨는 위자료는커녕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도록 박씨가 받은 돈은 단돈 28만원.

견디다 못한 박씨는 99년 4월 “양육비로 지급해야 할 돈을 빼돌리고 있다”며 오씨를 고소했다. 조사결과 오씨가 재산을 동거녀의 명의로 이전하고 친구에게 고율의 이자로 수천만원을 빌려줬는가 하면 세입자들에게서 받은 1400만원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오씨의 옷장 서랍에서는 1600만원의 현금도 발견됐다. 오씨는 결국 법원의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하려 한 혐의로 99년 12월 구속기소돼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부성애마저 삼켜버린 돈 욕심은 감옥을 다녀온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법원의 양육비 지급 이행명령에 대해 계속 ‘오리발’을 내밀던 오씨는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의 감치처분을 받았다.

오씨는 현재 박씨가 낸 두 번째 이행명령 신청 사건으로 다시 재판을 받고 있다. 오씨가 이번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100만원의 과태료나 한달간의 감치명령을 받게 된다.

▽실태〓서울가정법원의 한 관계자는 “이혼 남성들이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서도 양육비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한 이혼남은 돈이 없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다가 법원에서 한달간 감치명령을 내리자 이틀 만에 돈을 모두 마련해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혼 뒤 양육책임은 물론 경제적인 부담까지 외면해 버리는 남성들 때문에 이혼 여성들의 ‘살아남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게 여성계의 지적. 법원이 인정하는 자녀 1인당 양육비가 한달에 30만원에 불과한 것도 내실있는 자녀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최근 상담을 의뢰해온 600여명의 이혼, 별거 여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절반 가량이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등 양육비 확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대책〓조경애 상담위원은 “이혼 여성의 대부분은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전남편이 지급하는 양육비와 위자료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이는 개인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용 교수(부산대 법대)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여성에게 일단 국가가 양육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부양의무자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양육비 선급 제도’나 아동복지기관이 부양료 청구를 대리하도록 하는 ‘보좌제도’ 등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양육비 불이행자에 대해 과태료나 감치처분 등의 법적 제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일본 법원의 조사관제도를 원용해 양육비가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지급을 강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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