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대졸 취업 '부익부 빈익빈'

  • 입력 2001년 5월 18일 18시 46분


극심한 대졸자 취업난 속에서도 이른바 명문대 출신자와 지방대나 하위권 대학 출신들의 구직 양상에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명문대 졸업생들은 일자리가 있는데도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자발적 미취업’을 하고 있는 반면 하위권 대학 출신들은 ‘어디든 취업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신규채용의 감소와 기업들의 편견 등으로 입사 관문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실태〓99년 2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모씨(28)는 벌써 직장을 두 곳이나 그만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과 은행에서 일했지만 연봉이나 장래성 등이 이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 이씨는 현재 외국계 은행이나 컨설팅 회사 입사를 목표로 미국 재무분석사(CFA) 시험을 준비중이다.

충북의 한 대학에서 전자통신공학을 전공한 김모씨(27)는 취업 재수생. 김씨는 무선설비산업기사 등 자격증만 3개를 갖고 있지만 이씨와 달리 마음에 여유가 없다. 김씨는 “매주 두 번 꼴로 입사원서를 내고 있지만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진다”며 “지방 중소기업에라도 붙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지난달 공개한 지난해 8월과 올해 2월 졸업생들의 대학원 입학과 군 입대를 제외한 순수취업률은 35.0%. 그러나 일자리가 없어 취직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이 학교 취업정보실의 분석이다. 서울대 취업담당 직원 최미혜(崔美慧·43)씨는 18일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들에서 구인 의뢰는 꾸준히 들어오지만 취업 희망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고려대 취업지원부 박형규(朴炯圭·49)부장도 “취직을 못한 졸업생들의 상당수는 10대 대기업이나 외국계 회사 금융계 등을 목표로 준비중인 자발적 미취업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이 학교를 졸업하고 방송사 입사시험을 준비중인 이모씨(26)는 “함께 졸업한 친구들도 원하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1, 2년 정도는 기꺼이 투자하려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방대나 분교 출신자 또는 여학생 등은 일자리를 가릴 형편이 못된다. 지방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집계한 순수취업률은 50∼65% 수준.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과장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취업전문 정보지 ‘리크루트’는 자체조사를 통해 지방대 졸업생들의 순수취업률이 35∼40%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취업률이 64%라고 주장한 한 지방대학의 취업 담당자는 “인턴 같은 임시직이나 포장마차 운영 등도 취업에 포함시켰다”며 “정규직 취업은 30%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정보 전문사이트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대졸 구직자 500명을 상대로 3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지방대 출신들의 25.1%가 직종과 연봉에 상관없이 어디든 취업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정도로 이들의 상황은 절박하다.

▽기업들의 편견〓지방대 출신이나 분교 출신 등이 취업 관문을 쉽사리 통과하지 못하는 데는 기업들의 편견이 한몫 차지하고 있다.

서울 소재의 한 대학 취업 담당자는 “구인을 의뢰하는 기업들이 학점이나 토익 등 점수가 뛰어나더라도 분교출신이나 여학생은 추천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학교측도 가능하면 많은 학생들을 취업시키려 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취업정보지 리크루트의 오세인(吳世仁·33) 편집장은 “최근 인터넷을 통한 채용이 크게 늘면서 일자리 하나에 수천명이 몰리는 경우도 흔해 기업들이 응시자들을 거르는 일차적 기준으로 출신학교를 이용하고 있다”며 “지방대생들이나 분교생 등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예전보다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편견으로 취업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일부 대졸자들은 ‘출신성분’을 문제삼지 않는 공무원 시험으로 진로를 바꾸기도 한다. 98년 2월 지방의 한 국립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아직까지 취업을 못한 김모씨(28)는 “어쩌다 서류전형을 통과해 면접시험까지 올라가더라도 지방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매번 떨어졌다”며 “시험 성적만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생각”이라며 씁쓸해 했다.

<현기득기자>rat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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